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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교육도 변하지 않는다
기사입력 2020-12-31 오전 10:46:00 | 최종수정 2020-12-31 오전 10:46:24   
전재학 인천 세원고등학교 교감

우리는 흔히 세상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인간의 성장 발달에서 기는 것을 먼저 하지 않고 걷거나 달리는 것을 할 수는 없다. 빨리 가고자 해서 달리고 싶으나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자연의 법칙이라 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순서를 거르고 당장 필요한 것만을 우선시 하거나 그것만을 알곡으로 거두고자 한다면 어떨까? 이는 극히 모순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교육개혁이다. 교육의 혁신은 사회의 변화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찍이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미친 짓이란,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만든 제도(시스템)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이는 그가 말한 또 다른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처럼 무언가의 변화는 또 다른 무엇인가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학벌사회라 할 만큼 대학 이름을 중시한다. 이 말은 괜찮은 대학간판 없이 성공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명성을 쌓거나 재산을 가진 사람들마저 학벌 콤플렉스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는 학벌만으로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역으로 우리 사회는 S대 출신이라는 이름만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무임승차를 하는 격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일찍이 자수성가하여 사회적으로 명성을 유지하는 사람도 때로는 좋은 기회를 많이 얻고 싶으면 S대를 가라고 청소년에게 권유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비S대 출신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차별로 인해 받은 상처를 무의식중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곧 자신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인한 성취를 부정하고 이것이 옳은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학벌 좋은 사람을 잘 대접해주는 것 같다. 너희는 공부를 잘하면 이런 걸 누릴 수 있다고 청소년들에게 고백하는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잘 나가는 S대 출신의 작가이자 교수는 말한다. “저는 학생 때 생긴 습관 때문인지 아직도 경쟁의식이나 강박관념이 있어요. 무엇이든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뒤처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손에서 무언가를 놓지 못합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와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4명의 자녀들이 S대를 나오지 못하고도 초조함이 없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모습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판단은 보류하더라도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의식구조에 따른 모순을 지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이상적인 교육에 대해 말할 때 항상 핀란드나 독일, 프랑스의 교육 방식을 언급한다. 그래서 교육부 차원에서 해당 국가의 교육 현장을 탐방하기도 하고 방송사에선 취재한 내용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나라에서는 교육 문제가 우리보다 심각하지 않다. 왜냐면 사회의 제도와 통념이 우리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시 제도를 바꾸고 교육과정을 혁신하는 것만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를 선호하고 의사나 회계사 같은 직업인이 우대받는 분위기는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하지만 위의 나라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거나 인기 있는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도 적절한 노동량으로 많은 보수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다. 그런 제도가 사회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하고 다른 길을 가고 싶으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실생활에서 필요한 법과 인간관계 등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교육은 그 본질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연봉과 복지, 안정성 등 많은 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전문직과 기술직의 편차가 너무 크다. 또한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뿌리 깊은 유교적 직업관도 여전히 무시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하든지 먹고 사는 데 있어 크게 부족함이 없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으면 괜찮은데, 이것이 안 되니까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미 경쟁은 마치 국시(國是: national policy)처럼 당연하게 되어있다. 이제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공부를 잘해서 소득이 높은 직업을 갖는 것 외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히, 또는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게다가 현재 잘 살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노후를 자력으로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을 보라.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이 들어 박스를 줍기 위해 이리저리 헤집고 다닐까 걱정하는 것은 결코 기우가 아니다. 이런 슬픈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제 국민의 의식과 사회적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우리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는 이를 책임지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고 메말라 간다.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도 이를 부추기고 악화시킨다. 교육사다리도 붕괴되었다. 이젠 개천에서도 용이 나던 시대는 지났다. 부와 신분이 세습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잘 살 수 없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넘쳐 난다. 이런 사회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정답은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미래세대를 기르는 교육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교육개혁을 부르짖고 교육제도를 바꾼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시한부 환자의 삶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혁명적인 사회의 변화만이 교육을 성장발전시키며 따라서 고결한 가치추구로 승화될 수 있다

기사제공 : 월간교육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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