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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원동력 ‘skeptical animus’
기사입력 2022-04-15 오후 1:03:00 | 최종수정 2022-04-15 13:03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일찍부터 질문이 사라진 우리의 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도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르는 교육에 걸림돌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주입식 지식 교육과 입시교육에 매몰된 교육력의 한계다. 나라 안팎에서는 한국을 잘 아는 많은 경제, 교육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미래학자들도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한 애정과 우려 섞인 비판을 동시에 제기했다. 그뿐이랴. 우리의 내부에서도 “우리의 교육방식,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주입식교육’, ‘지식교육’, ‘입시교육’, ‘사교육’, ‘공교육 붕괴’ 등의 핵심 사항이 차지했다.

우리에게 회자되는 ‘하브루타’로 알려진 유대인의 교육방식은 <탈무드>와 <토라>라는 경전을 중심으로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질문하는 방식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유대인들의 저력은 바로 이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 인구 비율 중 0.2%에 해당하는 민족이 노벨상 수상자의 약 25%를 차지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않는가.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아는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양자역학의 닐스 보어, 공산주의 사상의 마르크스,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 언어철학의 비트겐슈타인 등 천재 유대인들의 공통점은 그저 탁월한 것만이 아니다. 거기엔 기존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한 새로운 이론의 창시자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상을 열어젖힌 그 경이로운 창의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유한계급론(有閑階級論)의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1919년 「현대 유럽에서 유대인의 지적 탁월함」이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가 주장한 유대인의 탁월함의 비결은 바로 ‘skeptical animus’이다. 이는 기존의 모든 가르침을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공격적으로 반문하는 태도를 말한다. 베블런의 주장은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낯선 땅을 떠돌며 주변인으로서 고난의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특성이 발달했고 결국 놀라운 창의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회의주의적 반문’이라 번역되는데 마치 철학자 데카르트가 「회의(懷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회의하라」고 주장하며 근대철학의 문을 연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사상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로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회의주의적 반문’은 이미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 정신사에서도 흔히 목격되고 있다. 우리가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를 읽을 때 대선배인 프로타고라스에게 악착같이 질문하며 대드는 것 같은 젊은 소크라테스를 보면 누구나 무례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시절에 얄팍한 지식으로 다 아는 것처럼 거만하게 떠벌리고 다니던 당대의 소피스트들을 꾸짖으며 ‘너 자신을 알라’고 주장하며 무지에의 성찰을 가르치지 않았던가. 산파술(産婆術)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지식(앎)’의 초보 단계로 돌아간다. 이처럼 질문은 지식의 한계를 밝혀 진정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주도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우리 학생들의 배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가르침의 내용보다는 무례할 정도로 공격적인 질문으로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skeptical animus’로 무장해 공격적으로 질문을 했다. 그 결과는 전술한 바와 같다. 스승은 청출어람(靑出於藍)과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제자 양성의 기반으로 해야 한다. 스승을 두렵게 하는 질문과 그로써 함께 공부하고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입국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이는 학생의 질문을 장려하고 또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질문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교사의 상호노력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을 회의하듯 질문을 통해 교사도 학생도 발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바람직한 교학상장의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기사제공 : 주간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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