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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바란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단상
기사입력 2022-06-24 오후 2:13:00 | 최종수정 2022-06-24 14:13   

장정근
서울 청원고등학교 교사


예일대 경제학 교수인 마틴 슈빅은 고안한 ‘함정 게임’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달러 경매 게임’이라고도 부르는 이 게임 방식은 단순합니다. 100달러 지폐를 경매 상품으로 내놓습니다. 호가는 10달러부터 시작되고 단계마다 1달러씩 오릅니다. 참여자는 갑과 을 두 사람만 참여합니다. 두 사람 중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경매에 나온 100달러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매는 다른 경매와 다르게 최고액을 적은 사람은 100달러를 갖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자신이 제시한 금액을 주최 측에 내야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서로 5,000달러를 불렀습니다. 누가 포기할까요? 만약 뒤로 물러나면 그동안 적은 돈은 포기해야만 합니다. 이 게임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패자에게는 엄청난 징벌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학 입시경쟁도 ‘함정 게임’을 닮지 않았나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입시경쟁에 더 매몰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가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입니다. 이를 놓고 교육 현장에서는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할 수 있기에 획일화된 교육 과정을 탈피할 수 있다고 교육부는 말합니다. 나아가 자신이 선택한 교육 과정이기에 학생 중심 교육을 이룰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입시경쟁 교육을 벗어나 교육 정상화를 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명분 앞에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따라서 이를 반대하면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무책임한 집단이라고 비난을 들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럼에도 교육 현장뿐 아니라, 학부모 사이에서도 환영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저는 처음에 교육 현장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고교학점제 취지에는 공감했습니다. 말로는 입시경쟁교육을 탈피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현실을 도외시한 구호보다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그 자체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관을 잘 헤쳐나가면 ‘교육 정상화’라는 난망한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도 조금 가졌습니다. 하지만 시범학교를 경험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먼저 고교학점제 여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교학점제를 운용하려면 제반 시설 구축뿐 아니라 공동체가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대규모 학교로 한 학년이 15개 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학교에 비해 고교학점제를 운용하기에는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도 낯설어 과목 선택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꾸준한 설명과 교육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교과목을 선택하도록 지도하여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관리자는 평가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옳은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간표였습니다. 학생들의 조건을 전부 수용하기 위해서는 정규교과 시간에 과목을 다 편성할 수 없어 8, 9교시가 불가피했고, 이는 선생님뿐 아니라 학생들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시간표 담당 선생님과 교과 담당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의 선택과목을 조정하는 등 큰 불편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첫해는 사회, 과학 선생님 중 일부가 다 과목을 가르치다가 전면 시행되는 지금 시점에서는 모든 선생님이 두 과목을 가르쳐야 시간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한 학기에 3과목 이상 가르치거나, 상치 과목을 가르치는 예도 적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수업에 대한 피로감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큽니다. 만약 규모가 작은 학교에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면 더 큰 문제를 가져올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둘째, ‘학생 중심 교육 과정’이라는 고교학점제 취지도 결국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학생이 선택한 수업이기에 수업 집중도가 향상되리라 생각했지만 오래되지 않아 이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영악(?)합니다.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수강하기 편한 과목,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그리고 특정한 과목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몰려 수강하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위권 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위권 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점제 정착과정에서 겪어야 할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3년째 접어든 지금도 이러한 경향은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지켜봅니다. 내게 필요한 것보다 지금 성적 따기 쉬운 과목, 공부를 덜 해도 되는 과목에 눈길이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특정한 대학, 학과는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암묵적(?) 과목이 존재합니다. 가령 공과대학 학생에게 물리Ⅱ과목과 미적분학 이수는 전공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할 기초 과목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교육 과정에 없었던 과목(고급 물리, 물리 실험, 화학 실험 등)도 이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과목이 아니라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과목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입시에 조금 더 유리한 조합을 찾다 보니 자신의 적성보다 대학이 요구하는 교육 과정을 이수하려 합니다. 입시경쟁 교육을 탈피하겠다는 취지와 다르게 오히려 입시경쟁 교육을 더욱 부추기고 있고, 마땅히 갖춰야 할 보편교육을 오히려 소홀하게 한다는 비판은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리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고교학점제가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인지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나아가야 할 길인지 아니면 잠시 멈추고 이 방향이 옳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고교학점제 시행은 이전에 비해 많은 불편함을 줍니다. 이러한 불편함을 감내하려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동의와 시행과정에서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시범학교 운영 과정에서 저는 고교학점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하나의 미봉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함정 게임’에 고교학점제가 포섭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전면 시행하면 긍정적 효과보다는 역기능이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기사제공 : 주간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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