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교 교감
우리의 삶에서 새까맣게 잊힌 말 중의 하나를 소환해 본다. “제발…… 나를 길들여줘!” 이는 프랑스 생텍쥐페리(Saint-Exupery 1900~1944)의 빛나는 고전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수많은 보석 같은 아름다운 관계의 언어를 남긴 작가이다. 그와의 친밀감을 회상하기 위해 몇 가지를 더 소개해 본다.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생겨난다”, “사막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곳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넌 네게 익숙해진 것들을 지켜줄 책임이 있어”, “내가 보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야.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등등이 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 익숙해진다는 것”이라는 의미를 신학년도의 시작과 즈음하여 다시금 숙고해 보고자 한다.
잠시 『어린 왕자』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발…… 나를 길들여줘!”라고 여우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라고 어린 왕자가 응대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사귀어야 하거든”, “인간은 자기가 길들이는 것만 알게 되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인간들은 뭔가를 사귈 시간이 없어. 그들은 이미 다 만들어진 것들을 가게에서 사거든. 그러나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어. 만약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많아야 해.” 여우가 말했다. “일단 내게서 조금 떨어진 풀밭으로 가서 앉아. 나는 너를 곁눈질로 몰래 조금씩 훔쳐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의 원인이 되거든. 그런 다음 너는 날마다 내게로 조금씩 다가오는 거야.”
그렇다. 요즈음 교직은 지극한 인내의 직업이다. 혹자는 극한 직업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한때 “배워서 남주자”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하는 직업이 바로 교직이 아니던가. 교직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람을 한 곳으로 모아준다는 것에 있다. 어린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교사에게 주어진 진정한 기쁨이다. 교사가 물질의 충족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것은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독방에 자신을 가두는 것과 같다. 인생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물질과 함께 그 안에 외롭게 갇히는 것이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지난날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들을 헤아려보면 그것들은 모두 물질과는 상관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현장이 온통 온라인 수업의 활성화 및 효율화를 위한 기술 혁신에 몰입되어 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지침으로 교육당국은 온갖 지시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혁신, 교육개혁은 디지털 기술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의 인간관계 맺기에 달려있다. 여기에 혁신적인 수업 방식의 변화를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디지털 기술에만 몰입하니 교육은 헛돌고 있지 않은가?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불만이 고조되어 간다. 교사는 연일 콜센터 직원이라도 된 듯이 학생들의 출석과 상담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학생은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는 수업, 과제부담으로 부대끼는 것에 불만이고, 학부모는 교사들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피드백을 해주지 못한다고 비난이 절정에 이르렀다.
진정한 교육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 사이의 관계 맺기에 달려 있다. 즉 교육의 성공은 서로에게 길들여지어 익숙해지는 것에 달려있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불러주면 단지 몸짓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와 꽃이 된다. 학생은 애정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아름답고 오래보면 사랑스럽다. 이런 것들이 바로 ‘관계의 미학(美學)’이라 하지 않을까? 교육은 바로 참을성을 가지고 서로를 길들이는 관계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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