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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교감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한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관행적이고 몸에 밴 과거의 것에 더 애착을 느낀다. 그러나 현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어지러울 정도이고 변화의 속도는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폴리(Buckminster Fuller)는 인류의 지식 총량이 늘어나는 속도는 100년 마다 두 배씩 증가했던 것이 1990년대부터는 25년으로, 현재는 13개월로 그 주기가 단축되었다는 ‘지식 두 배 증가 곡선’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한 흐름에 뒤처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 결과 과거의 익숙한 상태에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상황에 향수를 가득 머금는 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등학교가 그렇다. 대학입학전형을 위한 온갖 교육활동으로 교사와 학생이 좀처럼 여유를 찾기 힘든 학교는 경력 교사들은 옛날 학교에 대한 그리움을 소환한다. 하지만 여기엔 교사의 함정인 매너리즘이 작동한다. 이른바 교사의 나태함과 책임감의 결여라는 민낯이다.

몇 년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때는 학기말이었다.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던 2학년 보강을 들어가게 되었다. 1년 전에 가르치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반가웠는지 “선생님 제 이름 기억하세요?”라고 물으며 관심도 테스트를 하였다. 그때 생각나는 아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어 난처했다. 과거엔 한 반에 35명 내외, 5개 반 수업을 들어가니 170명 이상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또한 대다수 선생님들도 학생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학생들을 보면 교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야, 너, 아가야, 학생~’이라고 호칭하며 대화했다.

그런데 작년에 수업에 들어가는 150여명의 학생 이름을 전부 다 외우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것도 3월이 가기 전에 다 외운다는 것이었다. ‘학생 숫자가 적으니 가능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필자도 수업 담당하는 학생이 크게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 달 안에는 힘들어도 늦어도 두 달이면 가능할 텐데 왜 그동안 이름을 외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을 안 했을까. 교직 초창기에 비해서 학생 수가 많이 줄었고 또 일주일에 세 시간씩 수업에 들어가면서도 그 시간 동안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사는 공감과 소통이 가르치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지 못해 당황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에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겪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면서 고정관념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 특정 학년을 전담하다 보면 일 년마다 바뀌는 학생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남들도 모두 그렇다는 합리화였다. 셋째, 수업 외에도 날마다 당장 해야만 하는 많은 업무를 학생보다 더 중요시했다. 결국 학생지도에 마음만 앞선 채 매너리즘에 빠져서 한 해 한 해를 보냈던 것이다.

이 같은 고정관념은 최근에서야 모든 교사가 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사에게 당장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세상사는 기꺼이 시간을 낼 마음만 있다면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다. 또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다는 의미이고 가치 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에 시간을 투자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교사의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한다.

요즘 학교는 코로나19 방역으로 고등학교는 학생 2/3의 등교 원칙상 1, 2학년의 경우 격주 등교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저 학생 얼굴만 보고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금물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내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마음이 필요하다. 나태함과 익숙함으로부터의 탈출과 일상의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교사들은 당장 아이들 이름을 다정하게도 불러보고, 크게도 불러보고, 재미있게도 불러보고, 맘껏 불러보는 학생과의 관계가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