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인천 제물포고 교감)
성인이 된 사람이 살아오면서 인생에 위기가 없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위기는 보이스피싱을 당하거나 소개팅녀 앞에서 카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서 황당했던 일이 아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목표, 가치, 신념에 대하여 자문하며 투쟁한 이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자신에 대한 탐색과 자문의 과정을 권하지 않는 우리의 사회 문화와 교육에서 연유한다.
과거 우리의 핵심 도덕이었던 유교에서 개인은 주위 환경과 관계 속에서 상호의존적인 존재였다. 개인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서 결정되었고 자문과 탐색보다는 주어진 역할의 책임과 의무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맞추어 사는 것을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철학을 세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부모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은커녕 자신에 대한 윤곽선도 그려내지 못하고 자소서 대신에 ‘자소설’을 쓰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엔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른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그 말은 필자 자신도 모른 채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나약하고 열등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많은 부모는 자녀의 나약함과 열등함을 이유로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곧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 ‘과정’없이 어쩌다 어른이라는 ‘결과’만을 안게 된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마마보이의 신세를 벗지 못하거나 끊임없이 멘토를 찾아다니며 공허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다면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주체로 살아가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타인이 정해 놓은 규정과 그들이 간 길을 답습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한편으론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늘 주변을 기웃거린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아직은 성장기에 있는 중고등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네 생각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부분 몰라요 생각이 없어요. 생각하기 귀찮아요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이 정해준 삶을 생각 없이 그저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경험과 탐색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생각해 볼게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는 한층 성숙한 학생과의 대화이다.
학생들은 쉽게 생각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프리랜서가 되어 사는 것,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사는 것, 독립해서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여기에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자신의 삶을 일구어 가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학생들을 교육해야 할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여기엔 자신에 대해서 말하게 하고 또 글을 써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자신이 타인과 어떻게 다른지 등등 ‘자기 감각’을 찾게 된다. 물론 교과학습에서 많은 양의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때 강력한 걸림돌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소유한 의존심을 버린다는 게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민과 위기의 순간을 지났을 때, 비로소 스스로가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나다운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개인의 행복교육은 여기서부터 시작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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