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교감
‘인간은 추억의 동물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추억은 아름답기도 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오늘날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는 기성세대들은 그들 나름의 과거에 대한 진한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예컨대 7080 음악 콘서트를 보라. 학창시절의 노래를 들으며 과거에 대한 회상에 빠지고 그 속에서 기억 저편의 다양한 사연들을 다시 만난다. 문제는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가슴을 후비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추억이다.
대개 기성세대는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구타와 잦은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전화위복으로 이후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아픈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런데 이 트라우마가 무기력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는 교사와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도 그 바탕에는 강력한 트라우마가 부정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35년의 교직생활을 해오고 있다. 생각해보면 순간순간마다 교사로서 책임감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었던 것은 고3 담임교사의 영향력이 아직도 생생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3 시절, 당시 대학을 아주 잘 가던 대단한 명문고 학생으로 3년 동안 선생님들의 존중과 사랑을 받고 지나왔다. 그런데 3학년 어느 날 청소 시간에 날씨 탓에 다소 느슨한 정신력을 눈치 챈 듯한 담임교사는 작정을 한 듯 모두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걸레봉으로 무지무지하게 엉덩이를 두들겼다.
이는 전체 학급 친구들을 포함하여 필자에게는 고교시절 아픈 기억의 트라우마로 평생 동안 남아있다. 고교 3년 동안에 유일하게 선생님으로부터 맞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 사건의 트라우마가 이후에 교직생활에 그대로 남아 담당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각성제가 되기도 했을까.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특별한 트라우마가 있는가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억으로 이루어진 트라우마도 있다. 과거 1970~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남학생들이 학교 교사들에게 당한 구타나, 여학생으로서 경험한 성적 추행들은 그 세대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트라우마의 근거가 된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각목으로 반 전체를 구타하는 모습이나 여학생들의 속옷을 들추고 음담패설을 일삼는 교사들의 모습은 지금 보면 끔찍하지만, 인권의 가치가 무시되던 시절에는 일상이었으니 이제 중년이 된 세대들에게는 교사라는 존재가 어떻게 각인되었을지는 뻔하다.
문제는 이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기성세대가 현재의 학교현장을 과거의 기억으로 판단하여 교사들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중·고 교육의 기본 틀이 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은 교사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외부의 평가를 대비한 수업이 아니라 수업 자체에서 교육의 효과와 가치를 찾아 평가, 기록까지 이루어지는 일체형 교육을 추구하는데, 이런 교육과정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면서 부정하는 흐름이 정치권에 있고, 그 기저에는 앞에 언급한 트라우마가 깔려 있다.
이런 흐름은 결국 교육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목소리 큰 학부모들에 끌려 다닌 결과로 이어져 국가교육의 비전보다는 오로지 계층 간, 지역 간 입시경쟁에만 매몰되는 결과가 되었다.
앞서 필자의 사례와 같이 개인의 트라우마가 교사로서의 품위 있는 교육방식을 늘 생각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교육의 미래가 과거의 집단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는 국가에선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다행히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학력고사나 수능의 고득점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을 믿고 교육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면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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