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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학기를 기다리던 송탄고 허유진 교사는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편지를 썼다. 받는 이는 올해 반을 맡은 학생들의 학부모. 누가 우리 아이의 담임이 될까 궁금해 하는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경력을 적고, 새학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매년 학부모들에게 쓰는 ‘정직편지’는 허 교사가 1년 동안 학급을 운영함에 있어서 학부모에게 협력을 구하고 인사를 드리는 첫 순서다.

시작이 반이라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몇 가지 사항을 이어 쓴다. 촌지와 상품권,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찬조금 역시 걷는 일이 없다고 공고한다. 학급 임원이 됐다고 피자나 햄버거로 인사치레 하는 것도 사양한다고 적는다.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들이 부담 없이 빈손으로 오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인다.

허 교사는 편지 말미에 학생과의 깊은 관계 형성을 위해 ‘가정 방문’을 꼽는다. 학기 초 상담을 통해 학생들을 아는 것은 한계가 있을뿐더러 담임과 학생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기 어렵다는 걸 그동안 몸소 체험했던 터다. 학생을 획일적으로 대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픈 교사의 마음은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게 될까.

개학을 코앞에 둔 2월 말이면 허 교사는 바빠진다.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준비하는 일련의 교사들처럼 수업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운다. 3월 2일, 교실에서 처음 만나는 담임교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학생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동안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인상이 반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면 좋겠다. 허 교사는 소소하지만 여운이 도는 이 순간을 위해 학생들의 이름을 미리 외운다고 했다.

학기가 시작된 일주일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수업을 준비하고, 공문을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3월 중순. 허 교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급훈과 반가, 애칭, 구호 등을 정하게 한다. 학기 초 ‘2주’ 안에 학급내규를 정해 모두가 지킬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한다. 이 모든 진행은 학생들이 맡는다.

대신 허 교사는 꼬마출석부와 꿈단지(타임캡슐)을 내놓고, 학생들의 목표를 성찰하게끔 지도한다. 뭐처럼 만에 마음먹고 공부 열심히 하리라, 의지를 빛내는 학생들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일대일 결연을 맺고, 환경미화에 들어간다. 하루 날 잡아 BBB(비빔밥)데이나 라면데이를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떡볶이를 먹고, 노래방을 가고, 남학생들과 축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날이 더워진다 싶으면 물총싸움으로 더위를 날린다. 일각에서는 교사가 학생들과 너무 허물없이 지내는 것 아니냐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그래도 허 교사는 데이트 하는 마음으로 학생들과의 100일 기념을 준비한다. 장미꽃 100송이를 준비하고 카드를 쓴다. 1학기가 마무리되는 7월. 수고했다는 의미와 날 따라와 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발을 씻겨준다. 세족식은 허 교사의 종교적 신념을 담아 진행된다. 예수가 열두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먼저 섬겼던 것과 같이 학생들을 마음으로 섬긴다는 표시다. 무료한 여름방학에 지치는 학생들을 교사의 집으로 초대하다 보면 어느새 학생들의 성향이, 사연이, 소망이 허 교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1학기동안 살펴본 학생들의 특성을 자료로 구축하기 위해 진로지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마침 송탄고에는 진로교육의 달인도 있다. 송탄고 양운택 교장은 진로교육계 실력가로 꼽힌다. 학부모에게 똑 부러지게 인사하고, 학생에게 똑똑하게 다가가는 허 교사를 보는 학교장의 마음은 흐뭇하다. 송탄고 양운택 교장은 “마음을 다해 학생을 섬길 줄 아는 교사”라고 허 교사를 높였다.

허유진 교사는 “교사가 학생들을 존중하고 섬길 때 학생들 내면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와 교사의 권위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며 “삶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