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타케의 하이쿠다. 허공에 난분분 지던 꽃 이파리가 다시 나뭇가지로 돌아간다. 화들짝 놀라 자세히 보니 나비구나. 에즈라 파운드가 극찬했던 그 시다.
나는 서도친(서대문도서관친구들)이다. 4월의 도서관은 꽃 사태에 꽃 난리다. 도서관 초입에 공들여 가꾼 봄꽃들이 정겹고, 황금빛 융단 같은 개나리와 산 벚꽃이 아리땁다. 모름지기 도서관은 산자락에 위치하고 창이 커야 한다. 책의 숲을 산책하다가 최고의 스승인 자연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명산인 안산이 서대문도서관을 품고 있다.
꽃을 보며 남미문학의 거장이었던 보르헤스를 생각한다. 그는 해답 아닌 해답을 찾기 위해 시와 소설을 썼다. 그에게 삶은 미로 찾기였고 세상은 살아있는 미궁이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실명했던 남자, 보르헤스가 말했다.
“지상에서 천국과 가장 닮은 곳이 도서관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국립도서관장(1955~1973)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이 절묘한 역설을 「축복의 시」로 읊었다.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아이러니.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조물주는 세르반테스의 한 팔을 없애고, 밀턴의 두 눈을 멀게 하였다. 베토벤으로부터는 청력을 빼앗고, 팔십만 권의 책을 보지 못하게 보르헤스를 장님이 되도록 하였다. 운명은 때때로 이토록 잔인하다.
“도서관은 고대 성인들의 모든 유해가 보존되고 쉬는 신전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베이컨이다.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책 속에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도서관은 영혼의 약상자고, 책은 최상의 해독제며 진정제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향기가 배어난다. 삶은 끝이 있지만 앎은 끝이 없어서, 죽는 날까지 배우고 익혀야 한다.
지식의 반감기가 급격하게 짧아지고 있다. 평균 대여섯 개의 직업을 거쳐야 할 백세시대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평생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이 기능을 도서관이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서대문도서관의 각종 교육프로그램이 무척 알차다. 작가와의 만남과 책 잔치 그리고 문사철 인문학강좌들이 다채롭다.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공부하는 곳이 아니며 책들의 공동묘지는 더더욱 아니다. 고은초등학교 신연중학교와 함께 하는 독서지도교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어린아이부터 시니어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평생교육의 목표다. 도서관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거듭 나고 있으며, 마을결합형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마을에서 형성되는 평생교육기능을 도서관에서 수행하는 것이 21세기의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보르헤스는 9세에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신문사에 투고했던 신동이었다.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대문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였다. 실명한 보르헤스는 비서에게 책을 읽게 하고 귀를 기울였다.
도서관은 「천국과 가장 닮은 곳」이라는 작가의 통찰은 예리하다. 인간은 책이라는 배를 타고 시간의 드넓은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 배우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지식경제시대에 도서관이 진화하고 있다. 지식의 전진기지인 도서관이 평생교육의 베이스 캠프가 된다면, 마을이 학교가 되고 학교가 마을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잇사가 노래하였다. “꽃그늘 아래서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르르 하르르, 꽃잎은 무심하게 떨어지고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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