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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죽을 수 있어요.” 20일 밤 서울 서이초에서 만난 한 교사는 “지금까지 교직에 있는 자신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왜 눈물 흘리는지 아세요? 이게 다 본인 일이라고 생각돼서 그러는 겁니다. ‘학교생활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데... 저 선생님은 나 대신 죽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경기도 성남에서 왔다는 그는 연신 울먹였다.

“학교생활이요? 지뢰밭을 걷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학부모 민원을 상대하다 보면 피가 말라요. 누구도 우리 편이 되어 주질 않아요. 학교 관리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모두 외면하죠. 그저 교사는 지탄의 대상이고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일 뿐이에요.”

흰 국화를 들고 있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인터뷰 도중 하염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마 고인이 된 선생님은 너무 힘들고 외로우셨을 거예요. 경력 10년인 저도 너무 힘든데 얼마다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을까요.”

서이초 운동장 한편에 설치된 추모 공간. 밤 10시가 넘었지만 검은 상복을 입을 교사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캄캄한 교정, 노란 촛불에 흔들리는 그 밤, 어디선가 ‘스승의 은혜’ 노래가 들려왔다. 한 추모객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은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교사인 딸과 함께 왔다고 했다. 그는 어린 여교사가 당한 비극에 가슴 아프고 화나 가서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딸도 학교에서 학부모에 민원에 시달리고 있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어쩌다 교직이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직 5년차라고 밝힌 그녀의 딸은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낸다고 털어놨다.

“학교에 교권은 없어요.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예요.” 그는 하루하루 어떻게 견디며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교직에 미련 없다는 그는 올해까지만 교사 생활을 한 뒤 로스쿨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내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한 추모객은 고인의 죽음에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경력 2년차한테 1학년 맡기고 나이스 업무 담당하게 하라고 했다면 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요. 학교 측에서는 희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맡았다고 하는데 5지망으로 1학년을 맡은 게 희망인가요?”

그는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니 어린 교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떠안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를 둘러싸고 서 있는 고층 아파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며 눈물을 훔쳤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로 가는 길, 평소 같으면 성인 3~4명이 거뜬히 지나갈 수 있는 폭이지만 이날은 한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전국에서 보내온 조화들이 3중으로 빽빽하게 쌓인 것도 모자라 보도 반대편까지 늘어선 탓이다.

그 비좁은 길을 따라가는 동안 앞뒤에서 흐느낌이 계속된다. 학교 담벼락에 적힌 추모글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교사, 얼굴을 감싸고 오열하는 교사들도 보인다.

흰색 반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한 교사는 노란 스티커 종이에 글을 쓰면서 펑펑 울었다.

밤 11시가 다 될 무렵 교문 앞에서 추모객들에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사인펜을 나눠주던 교사. 그는 서이초 교사였다. 목소리는 잠겨 쇳소리가 났고 그마저도 듣기 힘들 정도로 작았다.

“너무 예쁘고 착한 선생님이었어요. 우리 모두 너무 힘들어요”. 검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머물다 떠난 서울 서초동엔 검은 상복의 물결로 가득하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 말없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돌아선다.

서럽게 울던 그들에게서 절망과 좌절, 분노가 읽힌다. 추모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살려달라는 절규인 셈이다. 성스럽다던 교단은 이제 생명을 걸어야 하는 곳이 됐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사실 경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5년 미만 교사들 중 최근 1년새 교단을 떠난 인원이 589명이다.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학생들한테 맞는 교사가 최근 5년 새 1,100명이다.

지난해 교총에 보고된 교권 침해 사례만 연간 3천여 건에 이른다. 책상 밑에 교무실과 연결된 비상벨을 둔 교사는 이젠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20대 젊은 여교사가 목숨을 끊고 전국의 교사들이 들끓는 등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달은 듯하다.

먼저 서이초의 초기 대응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20일 학교측이 입장문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해당 교사는 학부모 괴롭힘도, 학교폭력도, 학교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짐작도 못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에 근거 없는 억측이 난무하자 내놓은 고육책이겠지만 교총 주최 기자회견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이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분향소 하나 제때 만들지 못했다. 경황이 없었던 탓이다. 유족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이초로 근조화환과 추모객들이 몰렸다. 어린 학생들은 조화로 뒤덮인 그 길을 지나 등교하고 하교했다. 자신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싸늘한 주검이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또 어땠을까.

교육부는 벌써 출구전략을 찾는 모양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21일 한국교총을 찾아 현장 교원 간담회를 하면서 학생인권조례 재정비를 들고나왔다. 학생인권조례 이후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며 재정비 이유를 들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 과보호로 이어지고 이것이 학부모 갑질로 연결되는 고리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이번 사건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맞받았다. 조 교육감은 21일 서이초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부모 갑질이 있었는지 사실 확인을 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인권조례가 집중 타깃이 되는 것을 고려한 발언으로 보인다.

교사는 죽음으로 호소하는 데 교육당국은 이러고 있다. 지금은 학교폭력이건 학부모 민원이건, 교권침해건 모든 것을 교사 혼자 책임지라고 내몬 것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는, 교육청은, 학부모는 교사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게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의 역할이고 책무다.

22일 서울 종로에서 교사들의 집회가 있다. 생존권 투쟁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고인의 49재가 되는 오는 9월 4일 전국의 교사들이 병가투쟁 하자는 말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그동안 억눌리고 쌓였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성난 교사들의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그들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