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하교 교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는 현 정부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크게 감동을 준 명연설이다. 하지만 정부는 무색하게도 측근들의 부패, 비리, 반칙 등으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한때 우리 사회를 강타한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다시금 화두가 되었다. 이제 공정은 우리 사회에 시대정신처럼 회자되며 결국 정권교체론의 발단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뿌리 깊은 ‘위험한 시험 사회’를 돌아보며 과연 우리 교육은 얼마나 정의로운지 재고(再考)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iams 1929~2003)는 ‘전사(戰士) 사회’를 언급하며 몇 가지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했다. 거기서 형식적 기회균등, 즉 공정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전사 사회란 시험에 의해 선발된 소수의 전사와 다수의 평민, 두 개의 계급만이 존재하는 사회다. 그런데 전사가 모든 사회적 자원과 명예를 소유하기 때문에 이른바 제로섬 게임의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독식한다. 문제는 이런 카스트 제도가 전사의 자식은 전사로, 평민의 자식은 평민이 되는 구조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개혁가들은 잘못된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며 전사계급의 자녀와 평민계급의 자녀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어 시험에서 공정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른바 형식적 공정성의 발로였다.
하지만 이런 사회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도 정의로운 사회인가? 여기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 치열한 시험 경쟁에 의해 소수의 전사 계급(SKY 출신자)과 다수의 평민계급(비SKY 출신자)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제는 SKY와 비SKY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계급과 지역에 따라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서울의 부유한 지역에 살수록, 농산어촌보다 도시에 살수록 SKY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설령 모든 학생이 완벽하게 똑같은 확률로 SKY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것은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왜냐면 한국 사회는 SKY와 비SKY 대학으로 양분되는 전사 사회이기 때문이다. 공정과 기회균등은 정의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공정은 정의를 보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교육 정의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소유해도 전사 계급에 의한 독점은 계속된다. 즉, 모든 학생이 똑같은 기회를 가져도 SKY 중심의 독점은 유지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5년 간의 판사 임용에서 80% 이상을, 최근 10년 간의 검사 임용에서도 64.1%를 SKY 출신이 차지했다. 전사 되기의 단일가치와 단일기회가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의 교육체제는 SKY 입학하기라는 단일가치와 단일기회로 집중된다. 이는 독점을 낳고 결국 부정의(Injustice)의 핵심이다. 따라서 독점을 해체해야 교육의 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결론이다.
최근 통로가 한 개로 병목현상이 심각한 SKY 중심의 단일가치에서 다원적인 가치와 다원기회구조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김종영 교수의 <서울대 100개 만들기>가 주목받고 있다. 기회가 평등하더라도 소수의 학생이 들어가는 엘리트 대학독점체제인 SKY 대(對) 다수가 들어가는 비SKY의 구조는 그 자체로 부정의한 것이다. 이를 개선코자 하는 평평한 운동장 이론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지만 결과는 기만적인 사고방식의 부정의한 모델일 뿐이다. 왜냐면 역시 단일한 기회구조를 가진 전사 사회이기 때문이다. SKY 학벌독점체제는 매년 30~40조가 들어가는 사교육 공화국의 주범이자 비효율적인 낭비의 원흉이며 민주주의의 적이다. 공정은 정의의 덫이 되어 정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다. 우리 교육은 개별성과 다원적 평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교육을 구현하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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