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웅
서울 경동고등학교 교사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힘들어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어느새 또 새학기가 되어, 학교는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해진다. 연초에 가장 바쁜 일 중 하나가 3년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이다. 올해 졸업식 때도 작년처럼 학부모들은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학생들을 기다린다. 3년 아니 12년 배움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졸업식인데 졸업장을 받는 그 현장을 부모님의 눈에 담지 못한다는 것이 서운하고 안타깝게 여겨졌다.
이런저런 마음으로 졸업식을 보고 있다가 교직 발령을 받은 후 처음으로 학생들을 졸업시켰던 때가 기억이 났다. 그날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머릿속에 기억이 남아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있었다. 학생들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기념 선물을 어떤 것을 할까 생각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다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라. 세상은 추운 겨울과 같이 손발이 시린 경우도 많지만 너의 손발을 덮어 줄 이웃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아 양말을 선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졸업식 날 교실에서 졸업장과 함께 학교 및 동문회에서 준비한 선물 그리고 나의 선물을 전달했다. 어떤 학생이 물었다.
“이게 뭐예요?” “응! 양말이야. 겨울” “에이~, 저 양말 많아요.”
선물을 준비한 정성이 와장창 깨지는 듯했다. 의미 전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처 입은 가슴을 부여잡고 이렇게 다짐했다. “에잇! 다시는 선물을 주나 봐라.” 그날의 다짐은 아직도 나에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희망교실 예산이 신청하는 교사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가고, 밥도 먹고…. 의미 있는 예산이라 생각되어 신청했다. 시험 끝나는 날 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계획한 학생들을 불러 물었다.
“같이 밥 먹으러 갈래?” “약속 있어요.”
“혹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해봐!” “특별히 보고 싶은 책이 없어요.”
“ㅇㅇ전시회가 평이 좋던데 같이 보러 갈까?” “시간이 없어요.”
“ㅇㅇ영화가 새로 나왔던데 같이 보러 갈까?” “이미 봤는데요.”
왜 이렇게 밥 한번 먹기가 어렵고, 같이 문화 활동 한번 하기가 어려운지 알 수가 없었다. 참 좋은 예산인데 사용하기 너무 어렵게 생각되어 다음 해부턴 신청하지 않았다.
최근 나에게 작지만 큰 깨달음을 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선생님은 희망교실 예산을 받아 학생들과 참 멋지게 사용하고 계셨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걸을 했는데, 무슨 차이가 있길래 이 선생님은 학생들의 감사를 받으며 예산을 사용할까?
작은 차이가 있었다.
선물은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생각에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갖고 싶은 것,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생각하고 준비하여 베푸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 생각했다. 철저히 내 편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의 필요에 둔감했다. 나는 단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언제 시간이 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으면 되는 것을 바보처럼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이가 나에게 아무런 쓸모없는 물건을 선물로 준다면 그 선물은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는 대신 쓰레기를 주고 있었다.
새 학년을 맞이하며 소망이 있다.
상대방의 생각을 추측한다며 내 생각을 옮겨 놓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을 묻는 단순한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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