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고 교감
“엿 먹어라!” 이는 현대사에서 꽤 오래 전에 유래된 욕설과도 같은 말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남을 은근히 골탕 먹이거나 속여 넘길 때에 하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잠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중학교 입시가 있던 1964년 12월, 서울시 중학 입시에서 자연과목 18번 문제가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라”였는데, 보기에는 “디아스타제”, “꿀”, “녹말”, “무즙”이었다. 출제자가 요구한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불합격생의 부모들 가운데 일부는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음을 확인하고는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가지고 문교부와 시교육청에 찾아가 “엿 먹어보라”고 항의를 했다. 그리하여, 결국, 무즙도 정답 처리됐고 소송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구제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즙 파동’으로 당시 관련 고위 당국자들이 줄줄이 사표를 쓴 입시 출제 오류의 전형적인 모델이자 교훈으로 전해져 온다. 이는 몇 해 뒤에 결국 중학입시 폐지의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복수정답 처리가 아닌 출제 문항 자체가 오류가 되어 모든 답을 정답 처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21년 11월 18일에 실시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의 생명과학Ⅱ 문제에서다. 이 문제는 법원의 소송까지 가는 관계로 수능 성적 발표일에는 공란으로 일시 보류되었다가 몇일 뒤에야 법원의 최종 판결로 마침내 출제 오류로 확정되었고 모든 답을 정답으로 처리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그리고는 출제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불명예 사퇴하는 일로 마무리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대학입시에서 수시 합격자가 바뀌고 전체적인 입시 일정에 차질을 초래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른 학생들은 역대 어느 수능보다 어려운 “불수능”, “용암수능”, “마그마수능”이라 불렀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공백으로 학력 저하, 학력 격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공정 입시로 간주된다. 집단유전학 전문가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조너선 프리처드 교수는 이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수능 시험에 출제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했다는 소식도 보도되고 있다. 이는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문제 영역은 다르지만 다른 교과 영역에서도 악명이 높은 것으로 최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매년 악용되고 있다.
한심한 것은 문제의 오류가 지적됨(개체 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에 따라 평가원은 “문제의 조건이 불완전하더라도 답은 낼 수 있으므로 문항의 타당성이 유지된다”고 고집을 부리며 심지어 정답 결정처분 취소소송에 정부법무공단을 배제하고 대형로펌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가 세금 낭비 논란을 추가로 제공했다. 이번 사건은 1994년 수능이 생긴 이래 반복되어 온 출제 오류 논란이다. 그중에서도 복수정답 처리는 총 9번이나 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배운다. <논어> ‘계씨’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生而知之者上也),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고(學而知之者次也), 어려움에 부닥쳐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며(困而學之又其次也),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면 사람은 하급이 된다(困而不學, 民斯爲下矣).”라고 했다. 앞서 8차례의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 어리석음을 어떻게 탓할까. 문제는 우리 교육 현장 곳곳에 매너리즘에 빠지고 복지부동의 자세로 인해 고인 물이 되어 썩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단재 선생의 경고는 어느 한 분야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육도 역사 속에서 배우는 지혜를 살려 더이상 애꿎은 학생들만 엿 먹이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하길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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