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교 교감
최근에 전문적 학습 공동체 모임에서 어느 교사가 자신의 학창시절의 경험을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이 학창시절을 어떻게 지냈고 이를 통해 살아오면서 어떻게 자신을 성찰하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고백한 것이다. 그는 4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그 사건이 생생한 듯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이야기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창피했던 어릴 적 고백을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나에게는 화장실도 꼭 같이 가는, 요즘 말로 절친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 친구와 함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막 문을 열고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저쪽 복도 끝 우리 반 교실 앞에서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친구와 나는 스프링이 튀듯 내달렸지요. 우리 학급의 유리를 깬 친구는 1학년 아이였습니다. 아마도 장난을 치다 넘어지면서 유리를 깬 듯했습니다. 복도 바닥에 넘어져 있는 그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너, 1학년 몇 반이야?’ 유리를 깬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입에서 나온 그 말과 거의 동시에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어디 다친 데 없니?’”
그는 이어 말했다. “정말이지 무안함의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40년도 넘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때의 충격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그렇게 시작된 나의 고민,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왜 친구에 비해 인정머리가 없는 걸까? 그런 성찰은 사춘기 감정과 맞물려 혼란스럽고 또한 끝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말은, 반사적인 것이었기에 그 충격이 더했습니다. 급하게 나온 말은 곧 그 사람의 마음속을 가감 없이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잖습니까. ‘너, 어디 다친 데 없니?’ 그 후 그 한마디는 저에게 정말로 채찍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저를 타이르거나 때로는 마구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는, 그 말이 저에게는 채찍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구의 그 말 덕분에 저의 삶이 달라졌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필자는 이 추억의 사건을 대신 전달하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려는 것인가?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 )는 『마음의 틀』이란 책을 발간했다. 그 책 속에서 그는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하며 인간의 두뇌는 IQ로 측정할 수 없는 8가지의 지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언어지능, 논리 수학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자연지능, 신체운동지능, 대인지능, 그리고 자성지능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자성지능은 자신을 이해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 즉 자기성찰 능력이다. 어쩌면 이 자성지능이 나머지 7개 지능을 이끌고 간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다른 지능이 뛰어나도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할 능력이 없다면, 자신의 뛰어난 능력이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목적 지향적인 사람이 인정받을 가능성이 많다. 옆을 살피지 않도록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려 무언가 성과를 내는 사람이 능력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지나친 열정으로 어떤 일을 얻는 이익이, 그 일로 인해 초래된 집단 구성원의 불편함보다 압도적인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교사의 경우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와 경쟁의식으로 혹시 불편한 동료나 학생이 없는가를 자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사는 학생은 물론 동료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의 관계 지향적 사고를 펼쳐야 한다. 그럴 때 바로 “너, 어디 다친 데 없니?”하고 묻던 그 학생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향해야 한다. “너, 어디 다친 데 없니? 요즘 좀 힘들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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