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원격수업이 시작된 12월 기말시험 때문에 단 3일 등교한 것이 고작이다. 언제부턴가 부엌 작은 냉장고엔 즉석식품들로 채워졌다.
맞벌이다 보니 평일엔 점심 챙겨줄 여력이 없다. 출근 인사도 “공부 열심히 해”에서 “점심 잘 챙겨먹어”로 바뀐지 오래. 학교 급식은 이제 어쩌다 먹어보는 별식이 됐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A는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김밥 한 줄이라도 먹는 날이면 다행이다. 꿈나무 카드가 있기는 하지만 실직한 아빠와 일거리 없는 엄마랑 같이 사용한다.
예전엔 저녁 한 끼 해결하면 됐는데 원격수업 이후 하루 세끼를 카드 한 장에 의존한다. 교육청서 식재료 꾸러미를 받기는 했지만 절반은 먹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가정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저소득층이 아니더라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얼마든지 많다. 영양교사와 영양사들의 노력 덕에 학교 급식은 하루 중 유일하게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그런 최소한의 기회마저 사라져 간다. 언필칭 진보도 다를 바 없다. 늘 약자에겐 가혹하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한 해 60조원. 2021년 정부 예산이 555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중앙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명목으로 각 시·도 교육청에 예산을 내려준다. 내국세의 20.46%가 교육 예산 재원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순간에도 세금이 교육청 주머니로 들어간다. 출고가격이 2,000원인 맥주와 4,500원인 담배 한 갑을 살 때마다 각각 436원과 443원이 교육감이 쓸 수 있는 돈이 된다. 애연가와 애주가들이 건강의 위협을 무릅쓰고 아이들 교육에 힘을 보탠다.
서울시교육청엔 무상급식 한다고 책정했던 예산 중 500억원이 남아있다. 급식을 하지 않으니 돈 쓸데가 없어 쌓아놓은 것이다. 코로나는 창궐하고 자영업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데 교육청엔 돈이 남아돈다.
무상급식은 교육청과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50대 30대 20의 비율로 분담한다. 500억원은 교육청 부담 몫 3,875억원 중 쓰고 남은 돈이다. 그런데 이 돈이 불용 처리되거나 급식 이외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교육청이 쓰다 쓰다 못해 남은 돈 임에 틀림없다.
반면 김포시청은 지난 11월 학교급식비 미집행 잔액을 활용해 관내 유치원, 초·중·고교, 특수학교 등 178개교 재학생 6만 7,344명에게 4만원 상당의 식재료 교환권을 나눠줬다. 한눈팔지 않고 아이들만을 바라본 단체장의 상식이 새삼 돋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선제적 대응 운운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원격수업을 꺼내 들었다.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라는 친절한 안내 멘트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뿐이다. 교육격차가 벌어지고 끼니를 거르는 아이가 나와도 나 몰라라다. 원격이 능사고 무책(無策)이 상책(上策)인 교육청이 됐다.
능력이 없으면 돌려줘야 한다. 아무리 무상이라는 이름
이 붙었다 하더라도 이미 주인이 정해진 예산이다.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담배 한 모금 소주 한잔에도 백지징세(白地徵稅) 하다시피 했으면 최소한 성의 표시는 해야 하는 법이다. 코흘리개 아이들 급식비마저 떼어먹으려 하다니,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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