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시인·교육학박사
“부우웅~ 부우응~”어느 가을날 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진동음이 연속으로 울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떠 시계을 보니 1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늦은 시간에 흔치 않은 일이라서 긴장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핸드폰에 눈이 갔다. 별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교수님! 또 대상을 받았어요.” “교수님! 올해도 해 났어요. 축하해 주세요.”…… 학생들이 보낸 문자였다. 그 시간에 문자를 받은 경험이 거의 없는지라 궁금증이 더해 갔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문자를 확인해 보니 그제서야 감이 왔다. 그날이 내가 근무했던 대학의 가을 축제 날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가을 축제 날에는 각 학과의 응원전이 있었다. 응원전이 늦은 시간에 끝난 것이었다. ‘처음은 미약했으나’ 해가 갈수록 멋진 단복을 갖춰 입고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내가 소속된 학과의 응원단명이 ‘유토피아’였는데, 그들이 학내 응원전에서 최고의 상인 대상(大賞)을 받고 단원들이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나에게 그 소식을 알린 것이다. 잠결이었지만 너무나 기뻤다. 대상을 받은 것 그 자체보다 지난날의 땀이 헛되지 않고 작지만 큰(?)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단원들은 유난히도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후에 운동장 옆 체육관 밑의 그늘진 공간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교하여 연습한 결과가 헛되지 않았으니 단원들에겐 큰 영광이요, 그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대견함이 비할 곳 없었다.
그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학생들이 보낸 문자에 일일이 축하의 답을 보냈다. 순간 시상(詩想)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장하다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다음날 일찍 출근하여 전지(全紙)에 옮긴 후 내 연구실 벽에 게시했다.
장하다 유토피아! 올해도 해냈구나
몇 해 연속 홍은골에 승전고를 울리니
갈고 닦은 멋진 기량 백옥보다 눈부시다
무쇠를 녹일 듯한 한여름 더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구슬 땀을 흘린 결실
작지만 큰 영광되어 캠퍼스 빛 되었도다
두희 단장 앞에서 끌고 용우 부단장 뒤에서 밀어
아홉 바퀴 어김없이 돌아 품은 뜻 이뤘으니
이 기쁨 길이길이 과보(科寶)로 이어가라
이것을 본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교수가 붙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자보(?)에 학생들은 놀라기도 했고,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단원 중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학생들이 특별한 성취를 할 때는 시(詩)로서 격려해 주었다. 학년 말에는 내가 담당했던 과목을 수강한 학생 전원에게 붓으로 격려의 글을 써 주었다. 처음에는 작은 메모지에 학생 각자에게 맞는 내용의 손편지를 써 주었으나, 100여 명에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서 방법을 달리했다. 붓글씨를 쓰고 낙관까지 찍는 일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신뢰감을 높이고 심리적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교육의 출발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학생들과 내가 하나가 된 수업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학생들은 정년을 앞둔 마지막 학기까지 교수평가를 통하여 학과 최고 교수로서의 자리를 유지시켜 주었다. 교육에도 경제학에서 말하는 ‘등가교환(exchange of equivalents)’의 논리가 적용되었다.
교육현장에서 흔히 회자 되는 것으로 자기충족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말이 있다. 교육자의 기대(관심)가 학생에게 자성예언으로 작용하여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이다. 로젠탈(Rosenthel)과 제이콥슨(Jacobson)은 1968년에 실험 연구를 통해 교사의 기대가 학생의 성취를 바꿔 놓는 연금술사임을 입증했다. 어느 한 초등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시험을 친 후 무작위로 선정된 20%의 학생들이 몇 개월 후에 친 시험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한 일이라고는 무작위로 선정한 학생들의 명단을 담임 교사에게 넘겨주면서 '지적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명단을 받은 교사는 그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교사의 관심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렇다.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학생은 교육자의 관심을 먹고 성장한다. 루마니아 태생 유대인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이 말했듯,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학생에게 무관심한 교육자는 학생의 미래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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