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세원고등학교 교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은 널리 우리에게 알려진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아픔을 통해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오늘날 중고등학교의 청소년 사이에서는 웃픈 현실이 넘친다. 단적인 예로써 ‘안중근 의사(義士)는 성형외과 의사인가요?’, ‘야스쿠니신사(神社)는 야스쿠니에 사는 젠틀맨(Gentleman)이라는 뜻인가요?’, ‘6·25는 언제 일어난 전쟁인가요?’라는 질문에는 그저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비록 일부라 해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역사 상식은 이토록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 어려서부터 청소년을 괴롭혀 온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다. 이는 역사라는 것 자체를 어렵고 따분하게 여기게 만든다. 둘째,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비로소 한국사가 교육과정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셋째,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역사 공부의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배우고 익혔던 역사 지식마저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일련의 문제점들이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청소년의 역사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은 한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보통은 어렵고 글씨가 빽빽한 한국사 책을 펼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겐 역사적 사실을 통해 미래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단지 학창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역사를 지겹고 따분한, 골치 아픈 과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알고 익혀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역사교육에 접근할 방안이 필요하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역사 고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다. 이 책은 <본기(本紀)> <세가(世家)> <열전(列傳)> <서(書)> <표(表)>로 구성돼 있다. 이중 <표>가 바로 연표다. 동양의 인문학 대가들은 지난 2000여 년 동안 사마천의 <표>를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하고 이해했다. 대표적으로 다산 정약용과 중국의 정림 고염무는 다른 역사 고전이라면 몰라도 <표>만큼은 손때가 새까맣게 묻을 정도로 읽고 사색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따라서 연표는 동양 역사 공부의 핵심이었다. 서양의 역사 공부도 마찬가지다. 수학이나 과학의 공식, 음악의 악보처럼 인문학 교사는 연표를 중심으로 각 시대의 왕들이 일으킨 전쟁들이 바꾼 역사를 가르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마천의 <표>도 왕과 전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역사 공부의 방법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연표로 사색하는 역사 공부법이 사라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는 우리 교육과정에서 인문학을 없애 우리가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 마음껏 식민지 노예로 부려 먹고자 했다. 그 결과 세종대왕이 언제 한글을 창제했는지는 알아도 비슷한 시기에 오스만 튀르크제국의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사실은 모른다. 한마디로 이런 역사 교육은 한 면밖에 볼 줄 모르는 바보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역사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역사 지식들을 마치 구슬들이 하나의 실에 꿰이듯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그로써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처럼 역사 공부는 암기가 아닌 사색이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주인공은 타인이 아닌 바로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산 선생의 연표 공부법의 위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진정한 역사 공부의 방법은 이처럼 생각이 깊어지고 지식이 향상되며 학문이 진보하는 일석삼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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