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타계한 정원식 국무총리는 지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만 2년간 제30대 문교부(현 교육부)장관으로 재임했다.
그는 노태우 정부 첫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전교조 교사 대량 해직 ▲학력고사 폐지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 운영 ▲국공립사대 의무발령제 폐지 ▲EBS 개국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추진했다.
특히 문교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국외대 강의에 나갔다가 학생들로부터 밀가루 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총선에서 민자당에 유리하게 작용, 그가 국무총리에 오르는 발판이 된다.
이날 타계한 정 총리는 정치적 공과를 떠나 역대 교육부 장관 중 가장 우수한 장관으로 평가받았을 만큼 재임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남겼다.
1988년 문교부 장관에 오른 정원식은 1989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서울 시내 한 한정식집에 역대 문교부 장관들을 초청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학력고사를 없애고 대학입학적성시험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그로부터 2년 뒤 1991년 후임 윤형섭 장관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을 한다. 윤 장관은 “1994년부터 수능을 연 2회 실시하고 각 대학별 본고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정원식 재임 기간 동안 주목할 만한 사업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이다.
일명 ‘환특회계’로 불린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는 초·중등학교의 노후시설 개선과 교원편의시설 확충 등을 목적으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한시적으로 설치․운영됐다.
특별회계의 규모는 연간 3,700억원씩 3년간 총 1조 1,100억원으로,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다. 재원은 일반회계 전입금과 다른 회계로부터의 전입금 및 예수금(預受金), 기타 수입금이며, 일반회계로부터의 전입금은 교부금 재원으로 구성됐다.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EBS가 독자 채널을 확보하고 방송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정원식 장관 때 이뤄졌다. 1990년 12월 27일 정부의 방송구조 개편에 따라 KBS와 한국교육개발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교육방송 운영 체계가 KBS로부터 완전분리된다.
정 장관과 당시 문화공보부장관이던 최병렬(이후 서울시장)과 담판을 벌여 독자 채널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후 ‘교육방송’은 텔레비전 1개 채널, FM 라디오 1개 채널을 운영하게 된다.
교육방송 개국과 함께 EBS 특강이 시작되고 ‘밑줄 쫙’으로 유명한 고 서한샘 선생 등 스타강사들이 배출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방송은 교육부 장학편수실 산하 조직에 불과했다.
교원양성 임용체제 개편이 이뤄진 것도 정 장관 재임 기간이다. 1990년 10월, 헌법재판소는 국립 교·사대 졸업자 우선채용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다. 이에 따라 교사 임용시험은 1991년부터 지금과 같은 공개경쟁시험으로 전환됐다.
그가 장관 재직 중 치렀던 가장 큰 난제는 전교조 사태였다. 1천5백여명의 해직교사를 낸 전교조 대책은 청와대, 안기부 등 9개 부처가 범정부적으로 추진했던 사업. 주무장관이었던 그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 전교조는 불법단체다”라는 소신으로 해직을 밀어붙였다.
그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는 서울대 사범대 선후배 사이로 미국 유학 시절에도 자주 교류하는 등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그의 저서 ‘인간과 교육’은 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카운슬링의 개념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교육학자였다.
그는 지난 2018년까지 지인의 사무실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나 지난해부터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 3월 지병이 심해져 위중한 상태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엘 못가고 집에서 왕진 치료를 받았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자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정 총리와 각별했던 인사는 특별한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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