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삼삼오오 두 대의 드럼이 있는 음악실로 모여 연습을 시작한다. 학생들보다 먼저 음악실에 와 있던 교장선생님은 한 명씩 드럼 채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준다.
악보를 보고 박자를 익히며 드럼 연습을 하는 안곡초교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도 즐겁다. 가을에 있을 음악회에서 무대에 설 생각을 하면 학생들의 마음은 더욱 설렌다.
이처럼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드럼교실이 열리고, 1인 다악기 체험활동으로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안곡초등학교에서는 교육공동체 모두 행복한 교육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악기교실 통해 교육공동체 소통 기회 마련
“든 사람과 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된 사람’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최종경 교장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올라갈 ‘오름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최 교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드럼교실도 최 교장의 열정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희망하는 교사들에게 가르쳐주기 시작했던 드럼교실이 학생들에게, 올해 4월부터는 학부모들에게도 개방돼 운영되고 있다. 인성교육과 사교육비 절감 및 학부모 평생교육 차원에서 매주 운영하고 있는 드럼교실에는 7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드럼교실 외에도 클래식기타교실, 배드민턴교실, 탁구교실 등을 통해 최 교장은 교육공동체와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내 마음의 창’ 공책을 통해서도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나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시사적인 내용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생각을 공책에 글쓰기하면, 교장선생님이 직접 읽고 첨삭지도 및 격려의 글을 덧붙여준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무슨 꿈과 고민과 아픔과 요구를 가졌는지 보인다”는 최 교장은 학생들의 문화를 존중해 교내 음악방송에서 가요 중 가사가 건전한 곡을 방송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드럼을 배우고 있는 학생과 최종경 교장
학생들 꿈 펼쳐 보이는 ‘꿈나무 발표제’
안곡초교에서는 아침조회 시간을 활용해 꿈나무 발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설명하기, 몸으로 보여주기 등 학생들이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학생들은 춤, 노래, 무용, 프로젝트 찾아 발표(역사 주인공 연구, 초파리 한살이 생태연구 등 광범위한 주제)하는 등 다양한 재능으로 자발적 참여하고 있으며, 참여한 학생에게는 꿈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격월로 실시했으나 신청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매달 실시하게 되었다. 희망자가 많아져서 담임교사들은 다른 반 학생들과 주제가 겹치지 않도록 배치하느라 ‘즐거운’ 고민이 생겼다.
학생들의 참여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안곡초교에서는 꿈모델 조회를 통해 미용실 원장, 자동차 공학박사, 광고기획사 사장, 경찰관, 소방관, 응급차 기사, 연극배우, 장애를 극복한 학부모, 변호사, 검사, 영국인 등 다양한 분야의 명사 초청 강의를 마련해 왔다. 어른들이 발표하는 것을 꾸준히 접하면서 학생들은 직업의 다양성을 배우는 동시에, 부모님이 삶의 현장에서 얼마만큼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지를 생각해보며, 발표력도 길러지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안곡습지 체험활동으로 녹색교육 활성화
학교 옆에 자리한 안곡습지를 활용한 습지탐사 체험활동 또한 안곡초교의 자랑이다. 단순한 산책로로만 생각했던 안곡습지가 녹색교육의 현장으로 탈바꿈된 것은, 자연환경에 식견이 넓은 한 교사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교사는 호숫가에 사는 동물, 식물의 종류 및 개구리 알과 맹꽁이 알의 차이 등을 교사들에게 알려주었고, 서식하는 조류 종류 목록표 만들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며, 먹이를 직접 새에게 주는 활동 등 동식물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다.
안곡초교 교사들의 관심으로 시작된 안곡습지 체험활동을 타 지역 학생들에게도 개방하고자, 도지정 체험학습장으로 신청 및 운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안곡초교는 다른 학교의 신청을 받아 체험활동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안곡습지 체험활동중인 학생들
학교 운영은 “교육주체를 위한 잔치”
최종경 교장이 생각하는 교장의 역할은 “지시, 간섭, 관여, 참견이 아닌 기다리고 돕고 협조하는 것”이다. 안내자가 아닌 조력자와 동반자를 추구하는 최 교장은 학교 교육주체 모두가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2011년 공모교장으로 부임되면서 “교장의 잔치가 아닌 학교 교육주체를 위한 잔치를 펴 나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가기 위해, 교육주체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안곡초교 교사들은 최 교장과 운동을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육활동과 관련된 불만이나 요구사항 혹은 언짢은 일까지도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교직원 친목 연수 및 행사도 선생님들의 의사를 충분히 검토해 반영하고 있어, 이 같이 사소한 데에서 교사의 만족도와 효능감이 높아지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교장님 경영 마인드는 선생님들 의사를 많이 듣는 것이지요. 학교 운영에 있어서 되도록이면 선생님들이 원하면 하고, 원치 않으면 억지로 끌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늘 말씀하시죠”라고 말하는 교사들도 처음에는 ‘진짜인가?’ 생각했으나 나중에는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안곡초교에서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연 2회 ‘찾아가는 학부모 간담회’를 열어 희망하는 학부모 누구나 참여하도록 하여 학교당국에 요구하는 것과 불만을 사전에 경청하며 상호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학부모를 위한 드럼교실도 ‘우리도 배웠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받아들여 시작된 것. 이와 더불어 학부모 평생교육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명예교사, 녹색어머니회, 책 읽어주는 어머니 활동 등 학부모 참여의 다양한 통로를 마련하고 있어 학부모 삶에도 활력소가 되고 있다.
책읽어주는 어머니 활동 모습
대장암 말기 이겨내고, ‘스피드’에서 ‘슬로우’ 정열로
“작년 중국 교포들이 본교를 방문했을 때, 많은 학교를 방문했지만 이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학교는 처음 본다고 말해 뿌듯했지요”라고 말하며 웃는 최 교장은 생동감 있고 살아있는 안곡초교의 분위기메이커임이 자명하다. 8년 전 교감 시절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수술을 받은 9일 외에는 항암제를 맞으며 학교로 출근했던 최 교장은 “그 고비는 선생님이었기에 넘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 일을 계기로 ‘스피디한 정열’에서 ‘슬로우 정열’로 바뀌었다”는 그는 “정열만으로 교육이 되는 것 아님을 깨닫고, 눈높이를 아이들과 동료들과 함께하는 데에 맞추고 존중과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깨닫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했다.
“학교 공교육이 사교육 못지않게 얼마든지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최 교장은 내년에는 관현악교실을 구성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절제된 가운데, 비전을 향해 가는 것이 안곡교육의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함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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