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성적 인플레이션의 실태와 부작용
김 성 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성적은 학습결과에 대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정확히 제시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 성적은 개인에게는 진학과 취업시 활용되며 평생의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가급적이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적을 부풀리기도 한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이 중시되니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입시에서 유리하도록 성적을 조작하여 높이는 경우가 많아 평가방식을 상대평가 형식으로 변경하게 되었고, 대학에서도 일정 비율 이상으로는 성적을 높이지 않도록 제도화되었다.
성적평가 방법에서 절대평가는 학습목표의 달성 여부에 중점을 두며, 합산한 점수를 그대로 등급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90점 이상은 A, 80점 이상이면 B, 60점 미만이면 F로 표시한다. 이에 비해서 상대평가는 득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 상대적 위치에 의해서 등급을 부여하는 것으로 합의에 의해 성적순에 따라 등급별 비율을 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공과목의 경우, A가 30%, B가 40%, C, D, F가 30% 정도로 되어 있다. 두 방식 중에서 절대평가방식이 교육적으로는 타당한 것이지만, 문제의 난이도에 의해서 성적이 대체로 높거나 낮게 나타날 수 있다. 출제를 평가 원칙에 어긋나게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너무 쉽거나 어려울 수 있다. 시험 문제는 해당 영역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이면 통과시키는 자격시험에서 흔히 사용된다. 상대평가방식은 성적순에 따라 일정 비율로 등급을 정하는 것이므로 득점과 등급이 다르게 된다. 예를 들어, A를 10%로 정하면 전체의 10%에 들기만 하면 A등급을 받게 되기 때문에 90점대가 많으면 일부는 A를 받지 못하며, 70점대가 최고 점수라면 그래도 A등급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평가방식은 일정한 수의 지원자만 받아들이는 입학시험에서 사용된다. 절대평가방식에서는 교수들이 비교적 쉽게 출제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대부분 상향 조절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거의 모든 대학에서 상대평가방식으로 성적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평가방식은 비교육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대학에서 등급별 비율을 상향 조절하여 오히려 성적 부풀리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면이 있다.
교과부가 2011학년도 전국 4년제 대학 졸업평점 평균을 조사한 결과, 졸업생 90%와 재학생 73%가 B학점 이상이고 특히 교육계열과 인문계열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대학원 성적은 더 후해서 대부분 A학점에 간혹 B를 주는 것이 일상적이다. 대학원 성적에는 D학점이 없으니 D학점에 해당되는 득점을 했을 때는 당연히 F로 처리해야 하는데 일부 교수들은 C로 조정한다. 대학원생들도 학부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도 더 엄격하게 부여하기 보다는 더 관대하게 취급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지방의 어느 국립대학의 2011학년도 정보 자체공시 자료에 의하면, 전공과목 성적 전체 평균이 A 45%, B 33%로 나타났다. 전공과목의 A학점 비율만 보면, 전공분야별로 예체능계 58%, 인문계 49%, 의학계 32% 등이었고, 학과별로는 간호학과 71%, 유아교육과 66%, 체육과 65%, 미술과 60%, 치위생학과 31%, 전자공학과 30%, 화학과 29% 등이었다. 5단계 상대평가에서 흔히 중간에 속하는 C는 보통 수준으로 다수가 여기에 해당하며, B나 D는 이보다 적은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 대학의 경우에 전공과목 전체 평균 B이상이 78%라면 상위 등급으로 크게 치우친 것이며, 5단계 평가방식이 3단계로 축소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또는 교수들이 잘 가르쳐서 그렇게 될 수는 있겠지만 일부 강좌가 아닌 대부분이 그와 같은 경향을 보인 것은 결국 상대평가방식의 등급별 비율을 철저하게 준수한 결과로 보인다. 성적을 지나치게 상향 조정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성적을 후하게(?) 주는 이유는 학생들의 취업과 진학에 유리하도록 만들어 학생들과 대학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교수들이 강의평가를 의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성적을 잘 주는 교수의 강의평가에 대체로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 특히 결석이 잦은 학생들은 강의평가 항목에 정확히 반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상 성적에 따라 적당히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교수들은 후한 성적을 대가로 후한 강의평가를 교묘하게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재수강 기준을 낮춰서 C학점도 재수강이 가능하여 성적이 낮은 과목의 학점을 세탁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과목보다는 성적을 잘 준다고 알려진 강좌를 선호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최소한 B학점을 기대하며, 대학원에서는 무조건 A학점을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에 미달하는 교수들은 학점이 짜고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학생들에 의한 강의평가 결과도 그리 좋지 않다.
성적 인플레는 이제 상식화되어 있으니 취업에서 인사 담당자들도 대학성적을 변별력이 가장 낮은 항목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각종 자격증 취득이나 해외 연수에 큰 관심을 두는 것도 학점 불신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의 취업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선의의 취지에서 성적을 잘 주는 것이지만 모든 대학에서 동시에 하고 있으니 그 취지가 무색하게 되었다. 성적 인플레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비슷한 상황이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길지 모르나 성적을 부풀리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잘못이다. 본디 성적은 공정하게 부여해야 하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습결과를 가급적 정확히 알려줘야 당연하다. 점수가 학생의 능력을 얼마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의 타당성의 문제는 언제나 수반되게 마련이지만 아직까지는 더 나은 대안이 없고, 성적 부풀리기와는 별개의 사항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교육평론 4월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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