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입장에서 본 학부모정책
최상근 (한국교육개발원 학생ㆍ학부모연구실장)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라고 하는 공익광고가 있다. 진정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구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학부모를 매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멀리 보라 했으니, 자식에게 좋은 지침을 주는 것 같아서 괜찮은 말 아닌가? 라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부모도 학부모도 “가끔은 뒤를 돌아보아라” 라는 말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하게 짚어보려고 한다. 학부모가 학교와 관련하여 갖고 있는 생각은 ‘자기 자식의 성공’이다. 어떤 학부모에게는 이러한 ‘자기 자식의 성공’에 부합할 경우에만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교사들에게는 학부모들과의 관계에서 투자해야 하는 노력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대응 기제가 있는 것 같다.
학 부 모 교 사 (학 교)
자기 자식의 성공 VS. 노력과 행동 최소화
학부모와 교사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육을 구조적으로 보면 학부모는 고용주이다. 세금과 수업료를 내고 국가에 위탁을 했고, 국가는 지방자치단체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교사를 고용하여 가르치도록 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교사는 위탁기관인 국가에 채용된 피고용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각급학교에 단계가 있고, 진학이라는 사다리가 작용함에 따라 하급학교는 상급학교에 교육생산품을 제공하는 관계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교육생산품의 역할을 해야 하게 되고, 학교와 교사는 점포 주인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위탁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부탁이 되고 청탁이 된 것이다. 어물전에 놓인 생선에 주인장이 물 한바가지 더 끼얹어 주면 잠시 동안이나마 더 빛나는 상품이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학부모들은 늘 자기자녀를 직접 챙겨야 하고, 늘 가까이(한 건물 내에) 모여 있는 교사들에게 물어보거나 요구를 하거나 항의를 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처럼 인식해 왔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예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므로 결국 자녀는 물 한바가지를 기다려야 하는 생선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볼모와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교사들은 어느 한 학생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기초하여 늘 학급 전체, 학교 전체를 위하는 행동과 처치를 주장한다. 학부모들이나 제삼자가 보기에, 아무런 행동을 안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처럼 교육에 관하여 학부모의 입장과 교사의 입장은 늘 평행선이고 서로 배격하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가 이처럼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나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반영하는 정책을 논하기보다 학부모를 학교와 교사집단에 굉장히 친화적인 존재로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교육정책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학부모는 늘 교육과 교육기관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봉사할 마음과 자세가 되어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 정책은 학부모의 특성, 요구, 필요에 기초하여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해야 한다. 앞에서 다소 길게 학부모의 특성에 대하여 말씀드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학생들의 발전과 성공을 위한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세금, 수업료, 소풍비도 내면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데, 학교와 교사는 또 학부모들에게 제정지원을 해줘라, 청소를 도와줘라, 교통지도를 해줘라, 밥을 퍼줘라 등과 같이 도와달라는 것이 많다. 이를 학교 참여라고 하면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모든 학부모가 참여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부모 참여정책이 왜 교육공급자의 필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는 것일까?
학생이 입학하는 단계에서 또는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모든 학부모들에게 이런 것을 실천하는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1. 귀중한 자녀를 저희 학교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
2. 학부모님들께서는 저희 학교에 다음 사항에 대하여 묻고, 요구하고, 시정을 요청할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학부모 권리장전, 교장)
3.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의 발전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해주시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책무, 교장)
4. 저희 교사들은 자녀의 성적을 얼마만큼 올리고, 교우관계지도, 생활지도,
건강관리 등을 이렇게 하겠습니다. (담임교사)
5. 학교의 인적 물적 부족으로 인하여 학부모님들의 이러이러한 도움을 기다립니다.
(학부모 참여)
학부모의 학교·교사에 대한 요구 및 요청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야 한다. 학부모의 권리를 충실하게 보장하지 않고서는 단위학교 교육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 제대로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였던 것도, 사교육에 학생들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모두 다 학부모들의 권리와 요구에 대한 단위학교의 성실한 대응이 부족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맡긴 부모가 담임교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계제가 못된다. 이는 지나가는 고객이 생선에 물 좀 끼얹으라고 주인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교사가 이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각급학교에 [학부모 지원상담실]을 설치·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때 이 상담실에서 해당 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두고 있는 학부모 예비군을 활용한다면 좋을 것이다. 자녀 학교에 대한 학부모 경험이 있고 자기 자식의 모교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이므로 발전적으로 근무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어렵게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2009년 통계에 의하면, 학부모들은 시간이 없다는 것(49.8%), 학교차원에서는 학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30.2%), 홍보 부족(20.8%), 교사 기피(13.8%), 사회제도적인 차원에서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36.1%)이라고 나타났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전 사회적으로 정당화 시켜주고 가능한 시간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 당국에서는 ‘학교방문증명서’ 등을 공식적으로 발급하는 일, 교육청이나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는 학부모들의 학교방문에 따른 일정시간 유급휴가를 인정하는 법률 제정, 학부모들이 학교 방문하여 적극적으로 학교 참여 할 수 있게 하는 각종 관련 법률 제정(예: 학부모회 구성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부모의 권리와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에서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학교는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학교는 시행하고자 하는 교육계획을 공개하고, 교육과정을 공개하고, 교육결과를 공개하여야 한다. 학교는 그 공개된 결과를 학부모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학부모의 지적과 수정 보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다음과 같이 예시할 수 있다.
1. 개학 이전 시기에 연간 교육계획서를 작성할 시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 [교육요구권]
2. 작성된 교육계획서를 모든 학부모에게 배포. (정보공개)
3. 학부모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학습 및 수업과정을 공개 참관할 수 있도록 조치.
[감시, 확인 기능]
4. 전체 학교, 학년, 학급 및 자기 자녀의 교육결과에 대한 설명서를 작성하여
학년말에 학부모들에게 배포. [주체로서 인준 기능]
* 이를 시행하는 학교가 있고, 그렇지 않은 학교가 있는 등 여러 가지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교가 똑같이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자녀교육과 관련한 모든 영역에 걸쳐서 학교가 100%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부모가 담당하거나 보완해주어야 더 효과적일 수 있는 영역이 있다. 특히, 방과 후 가정 및 부모의 관리 하에 있게 되는 시간에는 부모가 보다 직접적으로 교육 활동을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활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학교에서 학습한 내용을 파악하여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학습 연마하도록 도움. (교육기능)
2. 식습관 행동, 건강관리, 시간 활용, 교우관계 관리, 취미 및 여가 활동 등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대하여 가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지도 교육. (생활 관리 기능)
* 학교는 막연히 부모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방치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부모가 가정
에서 교육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강조하고 때로는 요구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학교의 교육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는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가급적 상세하게 부모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내용 즉, 학부모가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는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모의 이해 없는 학교만의 성과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학교는 또한 민간단체 등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공동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역사회 발전과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재정 및 우수 강사 확보를 위해서도 지역교육지원청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학교의 적극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학교와 학부모간의 신뢰가 구축·강화될 것이며, 이로써 학부모는 학교의 부족한 측면을 보충하는 데에 직접 나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자기자녀 뿐만 아니라 자녀학교 학생 모두의 교육으로 인식이 확산되어 그를 위한 학교 참여가 증대되고 용이해질 것이다. 이러한 학교지원 활동이 전체 학부모 차원으로 확산되려면, 현재와 같이 일부 학부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교 참여 활동은 진정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선진 외국에서처럼 학부모회 운영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학교의 의사결정과정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도 감안하여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학생 교육의 주체는 학부모이므로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를 운영하여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학급 학부모회, 학년 학부모회, 학교 학부모회, 지역 학부모회 등 각종 학부모 조직과 단체의 운영 문제를 담는 학부모회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운영될 필요가 있다. 학부모는 동일한 필요와 요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이들은 이질적 집단이며, 최선의 교육을 희망하지만 최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부모의 의견을 필요할 때마다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먼저 정보를 공개하고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고, 지속적으로 학부모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면서 학부모의 지원과 참여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다.
<이 글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순회토론회-교육주체로서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에서 발표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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