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교 교감
1981년 한때 ‘잊혀진 계절’을 불러 국민 가수로 등극했던 이용이 불렀던 또 다른 노래 ‘바람이려오’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그대 잠든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이 밤을 지키는 나는/나는 바람 바람이려오 /그대 잠든 모습처럼 가만히 앉아/이 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어둠 어둠이려오/멀리서 멀리서 밝아오는 아침이/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삼켜 버려요/날개짓 하면서 밝아오는 아침이/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흩어 놓아요/산들산들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이 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바람 바람이려오”
이 노래는 자신이 바람이 되어 연인이 자는 동안 가만히 밤을 지켜주고 산들산들 부는 포근한 바람이 되어 감싸려 하지만 아침이 와서 아름다운 노래를 삼키고 흩어 놓는 세상의 풍파를 노래하고 있다. 포근한 바람은 세상을 지키고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이끌어 가는 리더의 본질과도 같다. 이는 『논어』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제12 ‘안연’편에서 노나라의 대부인 계강자가 공자에게 묻는다. 잔인한 사람은 죽여서 올바른 도(道)로 나가게 하는 것은 어떠냐고. 이에 공자는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에 따라 눕게 마련이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고 말한다.
바람은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아니하나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우리의 민속이나 문학에는 여러 가지로 바람이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단군신화에서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지상의 인간을 다스리러 내려올 때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함께 풍백(風伯)을 거느렸다고 《삼국유사》에는 기술되어 있다. 이때 가장 먼저 거론된 것이 풍백이다. 그만큼 바람은 우리 민족의 DNA에 내재해 현재도 우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어떤 바람이냐에 따라 그 정서가 주는 결과는 크게 다를 뿐이다.
우리가 주시할 것은 바람이 긍정적인 정서만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가수의 노래 ‘바람바람바람’에는 “문밖에는 귀뚜라미 울고/산새들 지저귀는데/내 님은 오시지는 않고/어둠만이 짙어가네/저 멀리에 키타소리/ 귓가에 들려오는데/언제 님은 오시려나/바람만 휑하니 부네/내 님은 바람이련가/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오늘도 잠 못이루고/어둠속에 잠기네/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날 울려 놓고 가는 바람.”의 가사가 등장한다. 이는 연인 간의 애절한 이별의 통한을 노래한다. 그저 휑하니 부는 차가운 관계의 바람이 멈추기를 안타깝게 바랄 뿐이다.
잠시 우리의 학창 시절을 되돌려보자. 거기엔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이런저런 모습으로 다양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차가운 겨울의 삭풍(朔風)처럼 냉냉한 관계로 트라우마를 남긴 경우도 있을 것이고, 훈훈한 춘풍(春風)이 되어 새로움을 욕망하고 희망을 간직하게 자부심을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여름날 열기 속에서 침체된 공기로 땀에 저린 냄새로 가득 찬 무풍(無風)과도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야외로 발길을 이끄는 형형색색의 낙엽처럼 매력적인 개성을 내뿜는 추풍(秋風)과도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학생들과의 사이에서 사계절의 특성을 지닌 바람처럼 기억되는 순간들이 깊숙이 내재 되어 있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만남으로 30년을 넘게 이어오는 훈훈한 춘풍과 서로를 그리워하는 매력을 듬뿍 담은 개성 가득 한 추풍이 있기에 나머지 매서운 삭풍과 벗어나고픈 열기의 무풍을 잊을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로부터 교사는 어떤 바람을 일으키고 싶은가. 적어도 바람 부는 대로 풀잎이 눕는 부드러운 바람이 되고 싶진 않은가. 학생들이 성난 모습으로 거칠게 저항하는 바람은 피해야 한다. 부디 군자(君子)처럼 교사의 선(善)한 바람이 학생들에게 선한 행동의 선순환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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