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교육사다리다!
김 대 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1. 교육문제의 뿌리는 교육 외부문제
지금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높은 사교육비 및 대학등록금 부담, 높은 대학진학률과 고학력 청년실업, 교육(대학)과 학령인구․산업수요의 심각한 양적․질적 부정교합(mis-matching), 부실한 평생교육, 학위․학벌․자격증을 따기 위한 소모적 경쟁과 청년인재의 불건전한 흐름, 지역․계층 간 교육 격차, 지방대학의 몰락, 시간강사 문제, 고등교육의 경쟁력 등. 이 난제를 종합하면 한국 교육은 몇십 년 전에는 저비용 고효율의 세계적인 모범이었다면, 지금은 고비용 저효율의 세계적인 전형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역대에 교육의 중요성과 준엄한 위기를 모르는 정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되어 왔다. 교육여건(시설, 장비, 교사의 양․질 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교육시험 사다리 외의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경쟁이 격화되었고, 학교와 교육이 변화한 산업 및 사회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외교․안보․통일정책, 복지정책에 관한 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기조로 복귀하여, 변화된 시대상황과 국민적 요구를 약간만 고려하면 그런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 금융, 공공, 노동, 정치분야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거의 무시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도 대안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제가 복잡하고 난해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본령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회가 축적한 지적․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전승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문명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교육의 기능은 개인의 소질․능력개발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가치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시험 등을 통해 개인의 소질․능력 및 교육성과를 평가, 검증하고, 자격(license)을 부여하고, ‘라벨링’ 하는 것도 중요한 기능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교육의 기능이 곳곳에서 고장 나 있다.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능이 고장 나 있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면 교육이 사회와 시장(산업, 기업)의 요구를 받아 안아 사회발전과 산업발전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기관, 프로그램)의 반응성과 책임성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교육과 사회․시장은 따로 놀고 있다. 고시․공시 준비의 장이 된 대학이 어떻게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겠는가.
가치체계를 형성하는 기능도 고장 나 있다. 사회에 불의가 넘치면 교육을 통해서 아무리 선진적인 가치체계나 문화를 가르쳐도 소용이 없게 된다. 사회가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면 공정, 공평, 투명 등 건전한 가치체계를 형성하는 교육이 먹힐 리 없다.
그런데 한국 교육을 왜곡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이 두 기능이 아니라 소질, 능력과 교육성과를 평가, 검증하고, 자격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원래 소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이유는 어떤 기준이나 관문을 통과한 자에게 자격이나 특권을 제공하고, 통과하지 못한 자에게는 그것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상식적으로 어떤 관문을 통과한 자나 자격을 획득한 자가 누리는 특권, 특혜가 클수록, 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한 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심할수록, 좋은 직업, 평판, 기회로 접근하는 다른 통로가 없을수록 미래가 보장된 관문 통과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자 직업과 명문대학에 대한 선호도는 강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다른 관문(통로)이 거의 폐쇄되다시피 하였다. 고졸에게 기회(9급 공무원과 대기업 생산직 입사 등)가 없어졌고, 전문대학과 지방대학 출신자에게 기회가 없어졌고, 인문사회계 전공자에게도 기회가 대폭 줄었다. 애초부터 과잉 공급된 이공계도 마찬가지였다. 석사, 박사도 과잉 공급되면서 기회가 없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변호사, 의사, 약사, 회계사 등은 독야청청(?)하였다. 반면 소득은 높아지고 신용(대출 등)공급이 늘어나면서 입시 사교육과 수도권 대학이나 외국 대학으로의 유학을 가계가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간 고시․공시에 매달릴 수 있는 물적 조건도 갖추어졌고,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성공만 하면 그 특권, 특혜가 그간의 시간, 비용 투자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대학의 고시․공시 준비장화도, 100만이 넘는 고시․공시 낭인도 개인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망국적 현상이지만.
요컨대 한국 교육문제의 60~70%는 교육 내부문제(교육이념, 방식, 교원, 재정, 지배구조 등)가 아니라 교육 외부문제이다. 관문을 통과한 승자가 누리는 특권과 특혜는 너무 큰 데 반해, 통과하지 못한 패자에게는 너무 심한 배제와 차별이 가해지면서 교육이 근본적으로 뒤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개발하여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하기보다는 모든 에너지를 관문 통과 그 자체에 쏟아 붓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교육문제는 입시비리나 채용비리를 발본색원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입시제도를 부모의 이력과 재력의 영향을 덜 받도록 설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평가제를 절대평가제로 바꾸고 대학을 평준화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 재정투입에 의한 반값등록금은 과잉 대학진학률을 뒷받침하여 청년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무엇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기에 효율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거듭 말하지만 교육문제의 대부분은 과도할 뿐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의 격차 구조와 교육시험 사다리 외 다른 사다리의 붕괴에서 온다. 더 좁혀 말하면 ‘괜찮은 일자리’나 ‘계층상승 기회’의 절대부족과 경쟁의 불공정․불공평성에서 온다. 학과, 학벌, 자격증을 둘러싼 경쟁이 격렬한 것은 이것이 절대 부족한 기회로 접근하는 유력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2. 문제는 계층상승 사다리의 고장
교육은 개인과 사회를 지적․문화(도덕)적으로 끌어올리는 리프트나 사다리에 비유할 수 있다. 개인 입장에서는 더 높은 노동생산성과 인격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다. 동시에 더 나은 소득, 직업, 지위, 명예, 배우자 등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다. 시험은 그 성과, 능력, 자격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사다리다. 한국에서 대학입시와 고시, 공시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과 일제강점기 고등문관 시험처럼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인식되고 있다. 공무원과 변호사, 의사, 기술사 등을 뽑는 ‘국가고시’만 사다리가 아니다. 학벌과 학위도 사다리 역할을 한다. 지금은 별 의미 없는 사다리지만 한때는 대학 졸업장 자체가 사다리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수능점수나 대학의 위치(서울과의 거리)가 사다리로 부각되고 있다. 사다리는 국가가 부여한 독점권도 있지만, 노동(취업)시장이나 결혼시장의 통념이나 관행도 있다. 통념이나 관행을 합리화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교육과 시험은 사람의 행위를 규율하는 가장 직접적인 평가보상 체계이자 동기부여 체계(incentive-penalty)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인간은 가치 전도된 행위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문제는 사다리를 매개로 설명할 수 있다. 대안 역시 사다리를 매개로 도출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사다리 위와 아래의 낙차가 크다. 이는 가장 힘센 존재인 관료(공무원), 재벌, 금융, 전문직, 노조가 연대성, 공평성, 공정성과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더러우면 출세하라고.” 이런 큰 낙차(특권, 특혜와 배제, 차별)는 오랫동안 자기계발에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패악이 엄청나게 크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교육(학위, 학과, 학벌), 시험(고시, 공시 등), 선거(평판), 시장(성과) 등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선출직 공직자 숫자는 너무 적다. 단적으로 한국은 지방의원, 지자체장, 국회의원 등을 합치면 선출직 공직자가 4,056명이다. 그러나 미국은 인구는 한국의 6배 남짓이지만, 선출직 공직자는 120배인 51만 3,000명가량 된다. 한편 시장 사다리의 경우 벤처신화가 무너진 2001년 이후로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벤처금융, 기업금융 시스템도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 특히 사회 활력의 견인차인 창업이나 사업은 연대보증제 등으로 인해 온 가족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일이 되었다.
한편 20년 전까지만 해도 공고 졸업자나 고졸자들에게 열려 있던 대기업 생산직과 9급 공무원 자리는 거의 완전히 막혀 버렸다. 그 선배세대(40~50대)들이 성과, 능력에 비해, 또 한국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은 보상(고용, 임금)을 쟁취하다 보니, 그런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부모 잘 만난 사람이 아닌 이상 좋은 학위, 학벌, 자격증, 합격증(고시, 공시 등)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차 등 ‘신의 직장’을 만든 노조가 일자리 대물림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과 일반 직장의 격차가 확대되고, 전자가 줄어들면서―이는 곧 사다리의 부족을 의미한다―더 적어진 기회의 사다리를 놓고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일단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평생을 가는 큰 특권, 특혜를 보장하는 자격증 열풍(사법, 행정․외무, 회계사, 변리사, 9급․7급 공무원 등)도 거의 완전경쟁에 노출된 다른 분야의 각박함 정도에 비례해서 뜨거워지는 것도 필연이다. 이는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과잉 고학력화를 낳았고, 채용시장의 약한 고리인 지방대학의 피폐화를 가져왔다. 투자 대비 효과성(취업)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확연했기에 투자=등록금 문제가 ‘반값등록금’ 문제로 크게 부각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부모의 재력, 보살핌 등에 영향을 크게 받는 10대 중후반의 학업성취도에 의해 인생의 등급―학벌(대학)과 학위(학과)―이 결정되다시피 하고, 평가의 잣대인 입시제도는 부모의 재력, 관심에 크게 영향을 받게 설계되어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 입시, 고시, 자격증 시험을 통해 ‘소질과 능력의 검증’을 사실상 끝내고, 이를 근거로 평생을 가는 큰 특권, 특혜를 제공하게 되면, 교육투자나 교육경쟁은 그 시기에는 집중․과열되고 그 이후에는 과랭되기 마련이다. 실제 교육 관련 국제비교 통계는 15~19세, 20~29세 취학률은 한국이 높지만, 30~39세, 40세 이상 취학률은 OECD 평균의 1/3~1/4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한국 교육시스템이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사회적 낙차 또는 승자들의 특권, 특혜를 적정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교육과 시험 외의 다양한 사다리(선거, 사업, 실적 등)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실력주의, 성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며, 패자부활전=승자재신임전이 원활하게 일어나게 해야 한다. 사교육 열풍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부모의 영향을 덜 받도록, 사교육에 의해 업그레이드되기 힘든 타고난 재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10대 중후반에 집중된 사다리 타기 경쟁을 고연령대로 일부 분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평생학습에 동기를 부여하고 그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한다. 공교육은 저소득층과 (극심한 수도권 집중을 고려할 때) 지방에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왜곡된 사다리 체계가 초래한 교육(공급자)과 사회․시장(소비자) 간에 양적․질적 부정교합을 해소하여, 궁극적으로 교육이 지식정보화 시대의 경제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해야 한다.
- 이어지는 내용은 교육평론 8월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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