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계기로 본 인성교육
교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 병 오(좋은교사운동 대표)
1. 들어가는 말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집단 따돌림과 폭행으로 인한 청소년 자살 사건이 우리의 마음을 찢어지도록 아프게 하고 있다. 사실 학교폭력은 부모세대 때부터 있었던 문제다. 그런데 부모세대의 학교폭력은 학교 내 힘이 센 특정 개인이 힘을 과시하거나 금품 갈취를 하는 것이 주였다. 그러니까 폭력의 가해자가 소수였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도 비교적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폭력의 가해자가 대다수 학생으로 확대되었고, 폭력과 따돌림의 유형도 다양해졌으며, 폭력의 강도도 훨씬 더 심해졌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전에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의 피해자였던 학생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빈번해졌고,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먼저 다른 친구를 따돌리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도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고 간헐적으로 있어왔던 현상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쇄적인 자살 사건은 이것이 단지 우발적이거나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교육과 사회, 가정이 매우 심하게 무너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임을 온 사회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된다는 한 가지 가치를 붙들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래서 이러한 물질적 풍요에 도움이 된다면 인성교육이 희생당하더라도 경쟁교육을 가속화해왔고, 돈벌이가 된다면 아이들 교육에 해가 되더라도 다 허용을 해 왔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만남이나 가정에서의 인격형성이 희생되더라도 다 감내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한 결과 교육의 양적 확대나 아이들의 성적 향상, 가정의 경제적인 풍요, 사회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해왔다. 그런데 또 다른 결과로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서로를 향한 폭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붙들고 달려왔던 가치가 잘못됐고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다시 우리를 돌아보고 근본을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죄를 짓고 결국 우리가 추구해왔던 사회적 풍요마저도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학교 교육을 생각할 때 그동안 우리가 너무 쉽게 교육의 본질을 놓아버리고 비본질적인 것을 붙들고 온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수많은 아이들이 죽음을 통해 외쳤고 또 외치고 있는 이 비명과 신음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근본을 돌아보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또 잠시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학교와 사회의 근본을 돌아보고 고치는 작업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본을 돌아보고 고치는 일이 힘들다고 쉽게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포기하고 몇 가지 눈에 보이는 땜빵식 처방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올해 들어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우리 학교와 사회의 대응을 돌아보면서, 우리 교육이 돌아가야 할 근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학교폭력의 실태
학교폭력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만큼 학교폭력의 현황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조사 발표되고 있다. 1994년 학교청소년상담원에서 ‘매 맞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교내에서 맞는 학생의 비율이 4.2%라고 보고되었다. 이때 초등학생은 9%, 중학생은 5%, 고등학생은 2%의 비율로 초등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1997년 ‘따돌리는 아이들,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친구를 따돌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들이 48.1%였고, 3.7%는 거의 매일 친구를 따돌린다고 응답을 했다. 또한 30%의 청소년이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5.2%는 거의 매일 따돌림을 당한다고 응답했다.
2010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청소년 위기 실태조사에서는 거의 매일 신체적인 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1%나 되었다.
가장 최근 조사는 교과부가 지난 2월에 실시한 학교폭력 전수조사 결과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3에 이르기까지 전국 558만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5% 정도의 학생들이 응답을 했다. 전체 응답자 139만 명 중 12.3%인 17만 명이 최근 1년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3.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과 시행 결과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자 정부가 지난 2월 6일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급하게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학교장과 교사의 역할 및 책임 강화’, ‘신고-조사체계 개선 및 가․피해학생에 대한 조치 강화’, ‘또래 활동 등 예방교육 확대’, ‘학부모 교육 확대 및 학부모의 책무성 강화’ 등 4개 분야의 직접대책과 ‘교육 전반에 걸친 인성교육 실천’, ‘가정과 사회의 역할 강화’, ‘게임․인터넷 중독 등 유해 요인 대책’ 등 3개 분야의 근본대책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학교폭력종합대책이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학교폭력 관련 학교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6월 8일 좋은교사운동이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들을 모시고 실시한 간담회에서 나온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관련 학교 상황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대책들의 경우 학교 현장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실제로 학교폭력을 줄이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학교 현장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우선,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치유하기보다는 당장 드러나는 학교폭력의 증상에 대응하는 데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 안을 살펴보면 학교폭력의 원인을 진단하는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고, 곧바로 ‘직접대책’과 ‘근본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학교폭력의 원인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학교폭력의 원인을 제시했다가 이를 다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원인 진단 없는 대책이라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급하게 혹은 제대로 준비 없이 나왔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 진단 없는 대책이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학교폭력 감소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 학교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고려와 학교가 안고 있는 짐을 덜어주려는 의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학교는 현재의 입시교육을 돌리고,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데만 해도 정신이 없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를 누르고 있는 입시경쟁 교육을 조금 완화해주거나 혹은 학교를 정신없게 만드는 각종 행사, 평가, 공문 등 수많은 일들을 줄여주어서 학교가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력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입시교육과 각종 연구 시범학교, 또 사업들은 그대로 다 하고 그 위에 인성교육, 상담, 또래 상담, 체육 활동 등을 더 얹어 하라는 것이다. 기존의 입시경쟁을 완화시켜주고 조금이라도 쉴 틈을 주어야 그 위에 인성교육이나 학급 활동, 상담, 체육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여유를 전혀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활동들이 가능할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 정부 들어와서 정부는 학업성취도 평가, 수능 성적 공개 등 학력 경쟁을 가속화하는 정책을 수행해왔다. 그렇다면 이 정부가 들어와서 실시했던 이러한 정책이 현재의 학교폭력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혹 이러한 정책이 학교폭력 문제를 심화시켰거나 인성교육을 실시할 여유를 뺏은 거라면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조치가 전혀 없는 가운데, 입시경쟁교육은 더 열심히 하고, 학교와 교사를 정신없이 돌리는 이 체제를 더 강화하면서 학교폭력 관련 몇 가지 조치를 내리고 있으니 교사나 학교의 입장에서는 교과부의 이런 태도에서 전혀 진정성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접근이 엄벌주의에 국한되어 있고, 교육 기관으로서 학교가 어떻게 아이들의 무너진 마음들을 치유해주고 회복하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접근이 없다는 것이다.
엄벌주의는 가해학생들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처벌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하고 그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소위 말하는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깔려있다. 이 관점이 잘못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처벌의 강화가 과연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행동양식이나 사고를 실제로 제어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범죄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비교처럼 처벌과 범죄가 갖는 복잡한 상관관계를 심도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엄벌주의 일변도의 접근은 학교폭력 발생 이전에 아이들 사이에서 사소하게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 상황들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풀어갈 것인가 하는 부분과 어떻게 학교를 평화적 공동체로 만들어갈 것인가, 또 가해자를 어떻게 교육해서 다시 사회 공동체로 묶을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 이어지는 내용은 교육평론 8월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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