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의 공존과 통합 과제1)
윤인진
고려대학교 교수
Ⅰ. 다문화사회의 도전
국가 간 인구 이동이 일상화되고 보편화되어 ‘이주의 시대’를 맞고 있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2009년 기준으로 세계 전체 인구의 2.9%에 달하는 2억 명의 인구가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1년 이상 거주하는 것으로 유엔은 추정하고 있다. 국제이주자들은 이민, 노동, 망명, 결혼, 유학, 방문 등 다양한 목적으로 모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면서 양쪽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으로의 국제이주인구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12월 기준 국내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1,395,077명으로 한국 인구의 2.3%를 차지하였다(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12). 전체 외국인 중 정주형 이주민이라고 볼 수 있는 결혼이민자와 혼인귀화자는 2011년 1월 기준 211,458명으로 전체 외국인 주민(1,265,006명)의 17%를 차지했다. 외국계주민 자녀(외국인 부모, 외국인-한국인 부모, 귀화 한국인 부모)는 151,154명으로 전체 외국인 주민의 12% 차지했다(행정안전부, 2011). 최근 부모를 동반해서 입국하는 ‘중도 동반입국 자녀’가 증가해서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수는 7,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오성배·황석규, 2010).
이처럼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들의 사회적응 및 사회구성원 간 통합이 우리사회의 중요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국인의 인권보호와 사회적응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국민인식은 과거에 비교해서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겉으로는 다문화를 표방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동화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의 상호공존보다는 ‘한국화’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리고 인권 보호 및 지원의 대상을 합법적 외국인에 한정함으로써 정작 도움이 가장 필요한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정책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또한 일반 국민의 64%가 한국을 단일민족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일반 국민이 외국인을 한국사회의 주체로서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인색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화의 흐름 속에 단일민족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국민도 73%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는 ‘단일민족’이라는 순혈주의 전통은 인정하지만, 세계화라는 흐름과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순혈주의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정부의 외국인과 다문화가족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과 일반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이 확대되면서 외국인과 여성 결혼이민자의 처지는 과거에 비교해서 크게 개선되었다. 국내 외국인 중 가장 큰 집단인 외국인 근로자 또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고용허가제의 실시로 인해 노동권과 근로조건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송출비용, 계약사항과 실제 근무조건의 불일치,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 산업재해, 건강검진 및 안전교육 부재, 차별 대우, 언어폭력 및 폭행 피해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 유색인종과 저개발국가 출신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과 차별, 경찰폭력, 타향에서의 식생활의 어려움, 종교공간 부재에 따른 종교생활의 어려움, 의료 등 복지제도에서 배제되는 문제, 법적 권리의 미보장에 따른 불이익 등의 다양한 문제가 있다. 불법체류자의 경우에는 단속과 추방의 두려움이 더해진다. 또한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에 노출되고 사소한 사건이 인종 간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가 크다.
이주노동자 다음으로 큰 외국인 집단인 여성 결혼이민자의 경우 한국의 사회문화에 대한 지식과 한국어 구사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문화적 충격이 크다.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한국인 남편의 상당수가 기대와는 달리 무직 또는 빈곤층이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대한 실망감이 크고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과 폭력, 언어·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혼이 파경을 맞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국제결혼 가족의 이혼이 급증하고 있어서 2002년의 1,866건에서 2007년에 8,828건으로 4.7배 증가하였다. 통계청의 2008년 이혼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부부의 이혼은 2007년에 비교해 7.5% 증가했으나 한국인-외국인 부부의 이혼은 29.8% 증가하였다.
다문화가정 자녀는 한국어 능력 부족, 학습부진, 학교 내에서 집단 따돌림 등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의 대다수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 학교에 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미진학 또는 중퇴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성인이 되었을 경우 사회․경제적 하층계급을 형성할 가능성 높다. 자신들의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서 찾을 경우 이들은 사회불만세력으로 성장하게 되고 2005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아랍계 청년들에 의한 폭동과 같은 집단소요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이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이들이 우리나라에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국민 의식을 다문화 수용적으로 선진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Ⅱ. 한국인의 다문화 수용성
외국인과의 접촉 및 교류가 증가하면서 한국인이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를 수용하는 다문화 수용성의 정도는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일관되게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가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변하였고, 한국인의 자격 요건으로 혈통과 문화보다는 정치적 소속감과 의무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최현, 2003; 정기선, 2004; 윤인진·송영호, 2011). 하지만 통상적이거나 인지적인 측면에서 외국인에 대한 태도는 개선되었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배타적인 것으로 보인다. 보가더스의 사회적 거리감 척도를 사용하여 한국인의 이주자에 대한 태도를 측정한 결과 동료나 친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긍정적이지만 혈연이나 가족관계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현저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상학, 2004; 황정미 외, 2007). 또한 코엔더스의 종족배제주의 척도를 사용하여 한국인의 다문화 수용성을 측정한 결과 한국사회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주민을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맹진학).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합법적 이주노동자보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 더욱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윤인진 외, 2010).
외국인 이주자와의 교류가 상징적인 수준에서 머물던 시기와는 달리 최근 들어 외국인과 내국인 간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희소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하고, 범죄, 이혼, 부적응 등 사회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온정주의로부터 냉담주의로 전환되어가는 추세이다. 외국인 이주자를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이들과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내국인의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이미 서구에서는 일상화된 현상이다. 다인종·다민족사회에서 다수집단은 한편으로는 소수인종집단을 평등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로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소수집단들이 주류사회의 사회경제적 기회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즉 다양성 속의 통일(unity in diversity)은 수사적으로는 이상적인 구호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이며, 오늘날 외국인 이주자를 받아들이는 모든 국가들이 고민하는 딜레마이다(Jones, 1997; 김현숙·최송식·김희재, 2011: 142 재인용).
한국인의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딜레마적인 인식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 확인되었다(정기선, 2004; 황정미 외 2007; 양계민, 2009; 양계민 2010; 조동기, 2010; 황정미, 2010, 윤인진·송영호; 2011; 김석호·신인철, 2011; 정기선, 2011). 이런 조사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특징은 겉으로 드러난 한국인의 태도와 인식은 관용적이고 개방적이며, 특히 다문화적 수용성은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과 종족배제주의적인 태도는 출신국가와 그 사람이 처해진 법적 지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비록 여러 의식조사를 통해 밝혀진 한국인의 다문화적 수용성은 기대 이상으로 높지만 진정으로 한국인이 외국인을 수용하고 이들과 공존할 자세가 되었다고 믿기에는 어려운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적 소수자집단에 대한 차별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1년 연간보고서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며 제기된 진정건수는 269건에 이르렀다. 이중 출신국가를 이유로 한 차별이 21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인종, 출신민족, 피부색을 이유로 한 차별은 각각 48건, 10건, 7건이었다. 더욱이 인종, 출신국가, 민족, 피부색, 종교 등 ‘다문화적 요소’ 때문에 제기된 진정 건수는 2005년 32건에서 2010년 64건으로 약 2배가량 증가해서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 수준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국가인권위원회, 2011: 149). 이런 현상은 한국인의 순혈주의와 자민족주의적 태도,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차별행위가 쉽게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 이주자들은 고양된 인권의식으로 더 이상 차별행위를 참지 않고 법과 제도에 해결을 호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인의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행위는 인터넷 공간에서 더욱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10월 한 달 동안 인터넷 공개 블로그, 이미지, 댓글, 동영상 등 인터넷상의 인종차별적 표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인터넷 상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외국인이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누리꾼의 정서적 반응에 호소하고 심지어 폭력적 행위를 하도록 선동하는 표현이 무려 210건이나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혼혈인의 증가를 막기 위해 국제결혼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등의 순혈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표현과 특정 국가 출신 외국인을 테러리즘과 연결해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시키는 내용 등이 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국가인권위원회, 2011). 인터넷 공간상에서는 이미 특정국가 출신을 비하하거나 차별적인 편견을 조장하는데 일정 수준의 이상의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례로 2011년 9월에는 부산의 한 목욕탕에서 한국으로 귀화한지 4년이 지난 우즈베키스탄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단지 외국인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욕탕 출입을 거부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목욕탕 주인은 “외국인은 물을 더럽힌다”, “에이즈 감염 위험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오면 단골손님이 떨어져 나간다”며 목욕탕 출입을 거부했다. 또한 2009년 서울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던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에게 버스에 함께 타고 있던 한국인 승객이 “아랍인은 더럽다”, “냄새 난다”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서 모욕죄로 기소된 사례도 있다. 그리고 2007년 5월 18일 나이지리아인 E씨는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신분증을 요구받고 아프리카인은 출입이 통제된다는 직원의 말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쫓겨났다. 이런 사례들은 일상생활에서 외국인과 다른 다문화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한국인의 의식과 실제 행동이 불일치하는 데는 상당 부분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기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려는 선망(social desirability bias) 때문에 실제보다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해, 그리고 다문화사회로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다문화 수용성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 ‘사회정의지수’, ‘성불평등 지수’, ‘민주화지수’, ‘자유지수’, ‘반부패지수’ 등에서 한국이 비교 대상 국가들 중에서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럽연합 회원국 20개국을 대상으로 한 2008년 유로바로미터 설문조사(Eurobarometer Survey) 결과에 따르면 성차별, 인종차별, 고령자차별, 장애인차별 등은 서로 간에 높은 상관관계를 가졌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이 사회정의지수, 성불평등지수, 민주화지수, 자유지수 등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관용성에서도 낮은 점수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사회지표에서 한국의 위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독일의 비영리기구인 베텔스만재단의 “사회정의지수(Social Justice Index)”에서 한국은 OECD 평균(6.67)에 못 미치는 5.89로 조사 대상국 31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구체적 영역별로 살펴보면 한국은 사회적 결속력과 차별에서 28위(5.28), 빈곤예방에서 26위(4.26), 세대 사이의 공평성 23위(5.72), 교육기회 19위(5.83)로 4개 항목에서 모두 OECD 평균 이하의 하위권에 속했다(경향신문, 2011, 11.3). 다음으로 세계경제포럼(WEF)은 2011 연례보고서에서 세계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 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성별 간 불평등 수준은 135개국 중 107위로 저개발 국가들과 비슷한 세계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정치적 권한, 경제 참여, 보건 수준, 교육 수준 등 4개 분야에서의 남녀 간 격차를 지수로 계산한 것인데, 한국의 성평등지수는 1점 만점에 0.6281로 107위를 기록해 지난해의 104위보다 3계단 하락했다(경향신문, 2011. 11.3). 영국의 유력 조사전문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최근 발표한 ‘2011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 중 8.06점을 받아 전체 167개국 중에서 2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8점 이상으로 완전 민주주의국가에 해당하지만 완전 민주주의국가에 해당하는 25개국 중에서는 22위로 낮은 위치를 차지했다(노컷뉴스, 2011, 12.15). 한편 민간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197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 권리 및 시민적 권리를 측정 대상으로 하는 자유지수(freedom index)를 발표해 왔는데 한국은 2010년 67위(자유국)에서 2011년 70위(부분적 자유국)로 순위가 하락했다(http://www.freedomhouse.org). 국제 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TI)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에서 한국은 2011년 183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부패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27위이며, 아시아 주요국인 싱가포르(9.2점 5위), 홍콩(8.4점 12위), 일본(8점 14위), 대만(6.1점 32위)보다도 낮은 수준이다(공감코리아, 2011).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적인 사회지표들에서 한국의 위치는 낮은 수준이며, 특히 사회정의지수, 성격차지수, 자유지수 등은 특별히 낮다. 개인의 인권, 평등권, 자유, 정의를 존중하는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유독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적 소수자들에 대해 관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Ⅲ. 다문화주의의 전개
1. 서구에서의 다문화주의 등장 배경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의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자국의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로부터 노동이민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급속한 비서구 출신 이민자들의 유입은 거주국의 인구학적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심지어 국가정체성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서구 국가들은 다문화주의라는 이념을 통해 신규 이민자들을 기존의 사회구조에 통합시키고자 하였다(Park, 2006). 캐나다는 1971년에 서구 국가들 중에서 처음으로 다문화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채택했다. 원래 의도는 퀘벡주의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분리운동을 차단하고자 한 것이었으나 이후 소수인종집단의 문화보호와 평등한 기회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9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는 미국, 호주, 유럽의 여러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소수민족과 원주민 그리고 소수 인종․문화집단들의 요구와 압력이 점증함에 따라 이들의 문화적 생존과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한편 자유주의 정치질서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는 방편으로 다문화주의가 채택되게 된 것이다(김비환, 2007). 킴릭카(Kymlicka, 2005: 31-36; 김비환, 2007에서 재인용)가 지적하였듯이 서구사회에서 다문화주의가 등장하게 된 원인에는 ① 선진국의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유입, ② 1960년대의 인권운동으로 인한 내국인과 소수인종집단의 권리의식의 고양, ③ 민주주의의 확립, ④ 냉전의 종식으로 지정학적 안전의 확보와 그로 인한 소수인종집단을 억압하거나 통제할 필요성의 감소, 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와 지지의 존재 등이 있다. 결국 비서구 출신 신규이민자들의 급증으로 인한 인구학적 변화와 이들에 대한 다수집단의 인종편견과 차별로 인한 소수인종집단의 사회부적응, 다수-소수 인종집단간의 사회갈등과 분열의 문제를 다문화주의라는 이념과 정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배경 속에서 다문화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2.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담론의 발전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문화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다문화주의에 관한 관심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의 수가 급격히 늘어가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장기체류 외국인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그들의 처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설동훈, 2004; 오경석, 2006).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담론은 정부가 한국의 인구문제와 인력문제를 종전의 출입국 및 외국인력활용정책 차원에서 벗어나 이민정책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활성화되었다(김남일, 2007).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한국의 저출산률과 고령화 문제의 해법으로서 국제결혼을 후원하였고,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자녀의 사회통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되고 전 세계적 경향에 부합하는 ‘다문화’라는 이름의 정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김희정, 2007: 75). 여기에 시민단체들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비교해서 힘들지 않고, 사회적 공감과 지지를 받고, 정부로부터 위탁사업 형태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거나 또는 기존 활동에 새로운 사업으로 추가하면서 다문화주의가 민간영역에서도 확산되었다(이선옥, 2007: 100). 사회학, 인류학, 국문학, 가족학, 사회복지학 분야의 학자들은 결혼이주여성 및 다문화자녀 문제를 새로운 연구 영역으로 인식하고 짧은 시간에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진행하였고, 이런 현상을 다문화주의 담론과 연계하였다. 특히 가족학자들과 사회복지학자들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전국 20여개 지역에 건강가족지원센터를 설립하여 다문화현상을 자신들의 연구 및 사업 영역의 확장에 발 빠르게 활용하였다. 언론의 역할은 결혼이주여성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KBS 1 TV의 ‘러브인 아시아’ 프로그램은 국제결혼 가정과 그 자녀들이 겪는 언어 및 문화장벽, 교육문제, 사회적 편견과 차별, 가족성원과의 갈등문제들을 보고하면서 다문화가족 문제의 심각성과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 및 지원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주지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2006년에 한국계 흑인 하인즈 워드가 미국 슈퍼볼 경기에서 MVP로 선정되고 ‘어머니의 나라’를 방문하면서 한국에서의 혼혈인 차별 문제가 부각되었다(이상길․안지현, 2007: 115).
1) 이 글은 2012년 3월 27일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된 2012 교육정책네트워크 교육현장 순회토론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준비되었다.
- 이어지는 내용은 교육평론 6월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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