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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인천세원고 교감)

21세기 교육과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창의성(創意性, creativity)이다. 창의성은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또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거나, 비일상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 등으로 그 개념은 매우 다양하다. 국어사전에서는 간단하게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는 위기의 순간이나 결정적인 상황에 합당한 생각을 새롭게 도출하는 능력으로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생명을 구하거나 위험을 극복한 사례는 많다. 여기에 그 한 사례를 들어보자. 때는 1971년 성탄절 전날, 93명의 승객을 태운 록히드 엘렉트라 비행기는 페루의 수도를 이륙한 지 10분 만에 추락했다. 3.2킬로미터 상공에서 벼락을 맞고 폭발한 것이다. 산산조각이 난 비행기의 잔해와 승객들이 페루의 열대 우림지대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생존자는 10여 명이나 되었다. 당시 17세였던 줄리안은 몇 군데 상처와 쇄골 골절이 피해의 전부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데 추락 후 생존자들이 내린 판단은 그들을 삶과 죽음의 갈림길로 내몰았다. 추락에서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은 구조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보온을 위해 나무를 주워 불을 피웠다. 그리고 연기를 피워 자신들의 위치를 구조대에게 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줄리안의 생각은 달랐다. 그곳은 깊은 정글이라 구조대가 자신들을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내리막길을 향해 홀로 걷기 시작했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물이 나올 것이고 물이 나온다면 반드시 마을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17세의 소녀가 밀림 속에서 어둠을 뚫고 혼자서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줄리안의 부모는 정글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정글을 탐사하며 나름의 깨달음과 배움을 통해 지식을 얻게 된 것이다. 줄리안은 11일 동안 위험한 밀림을 헤치고 걸었다. 이윽고 작은 강을 발견했고 강둑에서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다.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 다음날 사냥꾼 세 명이 오두막에 왔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가 목숨을 구해 주었다. 한편 밀림 속에서 불을 지피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10여명의 사람들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조난당했을 때 가능한 그 자리를 떠나지 말고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는 규칙이 결국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8년 전인 2014년 4월을 아직도 기억하게 한다. 당시 기울어져 가는 세월호 안에서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시시각각으로 침몰하는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하거나 여타의 창의적 생각에 의한 행동의 여지를 차단한 채 철석같이 구조를 기다리며 서서히 두려움과 고통으로 죽어갔을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 304명이 수장(水葬)된 참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처참한 인재(人災)가 되고 말았다.

원칙과 규칙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때때로 원칙을 뛰어넘어 새로운 생각 즉,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탑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를 조종하던 설리 기장이 새들과 충돌하여 양쪽 엔진을 모두 잃고 주어진 208초의 절체절명의 시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창의적인 사고로 850미터 상공에서 허드슨강으로의 수상 착륙을 시도하여 전 승객을 구한 결과를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에 창의성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평소 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생각을 키우는 창의성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