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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찾아와 한글 알려달라…봉사 결심
밭일 바다일 마친 어르신들 웃으며 등교

“선상님, 나가 먹고살기가 너무 퍽퍽해 그 동안 배우질 못했는디 인자라도 공부를 하고 싶은디! 어짜면 좋것소 잉!”

저녁 7시면 밭일과 바다일을 마친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어르신들이 향하는 곳은 노인정도 마을회관도 아닌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서면 학교장을 붙잡고 이 나이에도 한글을 배울 수 있냐며 고민을 토로하는 어르신도 있다. 이런 모습은 여기선 흔하디 흔한 장면이다.

전라남도 완도에 위치한 신지동초등학교(교장 노영진, 사진 위)에서는 오후마다 특별한 수업이 열린다. 학교장과 교감, 교사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하루씩 요일을 맡으며 어르신들의 까막눈을 밝히기 위해 교단에 선지 올해로 2년 째. 반딧불이 한글교실은 문해교육 일환으로 진행되는 신지동초의 자발적인 사업이다.

반딧불이 한글교실은 지난해 1월 문을 열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인생에서 먼 길을 돌고 돌아 학교로 찾아오신 한 어르신이 계기가 됐다. 노영진 교장을 찾아와 손을 잡고 한글을 가르쳐 달라며 애원했다고. 그 모습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노 교장은 전문종 교감과 김길용 교무부장에게 SOS를 쳤다.

처음 다섯 명으로 시작한 반딧불이 한글교실은 점점 학생이 늘어나더니 전교생 53명에 불과한 신지동초의 한 학급 인원을 훌쩍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 농어촌 마을에 유일한 시골학교 신지동초는 한 학급 최대인원 12명을 넘지 않는 소규모 학교다. 그런 학교에서 마련한 한글교실은 마을 곳곳에 소문이 퍼져 어르신 20명이 참석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농번기일 때는 숫자가 조금 줄기도 하지만 15명의 어르신은 꾸준히 출석부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어르신을 모시는 한글교실의 열기가 뜨겁다고 해서 수업이 순탄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단함과 피로에 지쳐 교실에서 조는 어르신부터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며 공부 못하겠다고 투정하는 어르신까지. 이런 모습은 여느 학생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랜 시간 학업의 끈을 놓았기 때문일까. 어렵게 용기 낸 배움이라는 도전에 한 걸음 빼는 어르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노 교장과 전 교감, 김 부장교사는 어르신들을 붙잡았다. 어르신들이 훗날 연필을 잡는 손에 힘이 생겨 제법 반듯한 글씨를 쓸 수 있게 됐을 때 세 사람은 환하게 웃었다.

신지동초가 이끄는 반딧불이 한글교실은 교육당국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처음부터 위에서 지시한 사업이 아니고 학교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풍족한 것도 아니다. 책상이 모자라 인근에서 책걸상을 공수해올 정도로 빠듯하게 이뤄지고 있다. 강사로 나서는 세 사람은 따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 여기엔 신지동초 나름대로의 깊은 뜻이 있다. 한글교실을 봉사라고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글을 모른 채 살아온 어르신들의 인생은 아마도 어둠이었을 것이라고 이들은 미루어 짐작한다. 그래서 기꺼이 봉사할 수 있다.

노영진 교장은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바다일과 밭일에 묶여있다가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교실 문을 여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며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고 싶다며 열심을 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배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