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버스를 타고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동네에 한참을 들어가니 멈춘 철도길 옆에 아담한 중학교가 눈에 띈다. 올해로 29년째 ‘무감독 시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인천 산곡남중학교(교장 전재학·사진)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운동장에 공놀이가 한창이다. 학교에 들어서자 모르는 어른이 낯설 법도 할 텐데 학생들이 꾸벅 인사를 건넨다. 수줍어 말도 못 꺼내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자기 집에 들어선 손님처럼 따뜻하게 맞아준다. 인사가 이렇게 중요한 덕목이었나…요즘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 기본적이고 모든 인성의 바탕이 되는 것을 어른들도 그동안 소홀하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됐다.
앞서 언급했듯 동교는 무감독으로 시험을 치른 지 29년을 맞았다. 1987년 개교 이래 지난 1994년부터 지금까지 중단되어 본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도덕적 양심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효과적이라는 동교의 교육철학에 따라 중학교지만 학생들의 학습 능력 향상만큼이나 민주시민으로서 인격과 도덕성을 키우는 사명을 갖고 학교경영방침을 지켜왔다. 오히려 동교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학교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
교장은 책마차에 ‘생각하는 힘’을 싣고
동교 교장은 월요일 아침마다 중요한 일정이 있다. 매주 학년별로 도서를 추천해주는 일이다. 추천기준에 대해 전 교장은 1학년은 읽기 쉽고 재밌는 내용으로 책에 흥미를 갖게 하고, 2학년은 문학과 에세이 관련 책에 흥미를 고취하고, 3학년은 철학 관련 책을 추천하여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고 한다. 사실 디지털 세대가 책을 손에 쥐고 흥미를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교장은 책이 주는 영향력이야말로 디지털 대문명을 선도하는 창의성을 키워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고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책마차를 끌고 나갔다 하면 학생들에게 완판(?)됐다.
▲ 전 교장의 책마차 등장에 쉬는 시간 책을 빌리러 몰려든 학생들.
동교의 구조는 각 층별로 한 학년씩 위치하고 있다. 교장이 직접 고른 책을 책마차에 싣고 복도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면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복도 양끝으로부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사실 책이 궁금해서 오는 이도 있을 것이고 다정한 교장선생님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오는 학생도 있을 것 같다.
처음 책마차가 등장했을 때 과연 교장선생님이 어떤 책을 추전하는지 학생들이 굉장히 궁금해했다고 한다. 책을 고르며 짧지만 사제 간 깊은 유대감을 나누고 그렇게 동교 학생들의 책사랑은 깊어졌다. 이같은 영향이 컸을까. 학생들은 해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의 아름다운 협력 이야기 공모에 선정돼 ‘고루 나눔상’을 수상했다. 수상자 대부분 사서 교사인데 교장으로서는 전 교장이 유일했다.
이렇게 책마차 운영이 학교문화로 안착하기까지 사서 교사도 큰 몫을 했다. 사서 교사는 학교장의 의도를 이해하고 책마차의 구성과 제작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학년 한 학생은 “평소 책을 거의 안 읽어요. 하지만 교장 선생님이 추천하는 책이잖아요. 그리고 도서관까지 갈 필요가 없이 복도에서 바로 빌릴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해요”라며 감사를 전했다. 이렇게 ‘책읽는 학교’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을 이룬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제동행의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 동교 태권도부의 2022년 인천 태권도 중등부 종합우승 기념사진
지역 유일의 하키, 태권도 선후배로 이어져
지난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인천은 무려 9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중 태권도에서 77kg급 동교 용경민 학생이 선전해 금빛 발차기에 성공했다. 이뿐 아니다. 동교 태권도부는 1989년도에 설립돼 해마다 인천지역,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두고 국가대표도 배출했다. 동교 출신 태권도부 지도자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후배이자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작년 2022년에도 인천광역시 협회장기 쟁탈 중학생부 종합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마다 우승기를 선사하는 태권도부가 있는가 하면 동교 하키부는 이미 대내외에 유명하다. 1990년 창단한 하키부는 현재 인천지역 유일한 남성중등부 하키팀으로 이미 2005년부터 지역 소년체육대회에서 1위를 한 번도 놓쳐 본 적 없는 인천 하키부 명문 중학교로 소문나있다. 지난해도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중고하키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앞서 2009년에는 춘계남여하키대회에서 중등부 결승전에서 전국 최강 자리를 탈환하기도 했다.
동교가 명문인 데는 이유가 있다. 1987년에 설립돼 현재 코치인 교사도 동교 출신이다. 이 때문인지 하키는 운동 강도도 세고 부상 위험도 큰 격한 종목이라 훈련 중 멍도 많이 들고 상처도 많이 생겨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어도 선후배 간의 밀고 당기는 유대감이 학생들이 신나게 하키를 즐기는 종목으로 자리 잡게 하지 않았을까.
▲ 제33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중고하키대회에서 준우승한 동교 선수들
“삼위일체 성장하는 진정한 명문”
“디지털 대문명의 대전환 시기에 무조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일반고만을 진로로 정하는 과거를 과감히 탈피하고 다양한 진로 체험이나 활동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꿈과 끼, 적성을 일깨워 특성화고·마이스터교·특목고·영재고·예술고·자사고 등 다양한 진로로 열어주어야 합니다” 전 교장의 말이다. 실제로 동교는 벌써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생겼고 창업 비즈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작년에 인천광역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꿈과 재능을 펼치고 있다. 진로 교육 중심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여러 인사를 정기적으로 초빙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재능과 진로를 꿈꿀 수 있는 롤 모델을 제시했고, 이에 못지않게 학부모 역시 정기 총회와 다양한 부서별 연수를 통해 디지털 전환의 시기에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닥칠 미래를 가늠케 함으로써 자녀들의 꿈과 재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했다. 학교가 울타리 안의 학생만을 지도하는 과거에서 학생과 학부모, 지역 주민의 성장을 돕고 지역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시대임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전재학 교장은 “사람이 우선이다”를 학교 경영의 최고로 실천하고자 전 교직원 간에 ‘상호 존중’을 강조하여 나누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교직원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학생 성장’을 목표로 인성과 실력이 조화를 이룬 괄목상대한 학생을 키우고 발전시키도록 디양한 교육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교직원의 ‘전문성 향상’을 목표로 각종 연수 및 석박사 과정, 개인 및 집단연구를 권장하고 모든 교육활동과 결과를 글로 남겨 공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등 전문성 함양에 힘쓰고 있다. 더불어 이제 학교는 과거의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창의적인 수업과 ‘즐거운 학교 만들기, 갈 데까지 가보자’는 구호를 내세워 재미있고 행복한 학교문화 창조에 나서고자 온 교직원과 함께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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