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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29일 대학의 자율적 혁신·운영 지원을 위한 「대학설립·운영규정」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학 운영 시의 4대 요건, 통폐합 기준, 소유 원칙 등을 완화함으로써 대학이 역동적으로 혁신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은 설립 후 운영 중인 대학에 대해서는 4대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 재산)을 완화하고, 일부 학과의 새로운 캠퍼스로의 이전이 용이하도록 하며, 대학 간 자발적인 통폐합 시 일률적인 정원 감축 의무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공급자인 대학의 설립자나 경영자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종전에 적용되던 대학 설립 및 운영 기준인 교지나 교사(校舍)의 규모를 완화하여 교사(校舍) 확보율이 100% 이상이면 교사 및 교지를 임차할 수 있도록 하고, 신규 캠퍼스의 시설·여건을 갖추면 일부 학과의 캠퍼스를 이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임대 대학’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원 확보에 관해서도 겸임 및 초빙 교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규 교원 대신 겸임 및 초빙 교원을 확대하여 고정비 지출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전국교수단연대회의는 지난 8일 국회 정론관에서 4대 요건 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학설립·운영규정 전부 개정 추진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은 대학 규제 완화정책을 ‘시장만능주의 고등교육 정책’으로 규정하고, “교수는 피해를 보고, 사립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등에게만 유리하다.”라고 주장했다.

인구 감소로 대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가 시의적절한지에 의문이 간다. 지방의 국립대학까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현실에서 지역 간 캠퍼스 이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특정 지역에 대학이 집중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회만 있으면 수도권으로의 캠퍼스 이전을 노렸던 대학들이 교사 및 교지를 임차하는 방식으로 학생 수 감소의 위기를 돌파해 보고자 한다면 지방의 대학 공동화 현상이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했던 국·공립대학의 정원 조정을 대학의 자율에 맡김으로써 그간 교육부가 추진해 온 정원 감축 정책이 원점 회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뿐만 아니라, 사립대학과의 평형성의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정원 조정의 문제는 대학의 재정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학생 정원을 기준으로 교사·교지·교원 확보 기준을 산정하던 것을 신입생 미충원의 경우 재학생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경쟁력 없는 대학이 수명을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피해는 당연히 학생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학진흥재단의 재정 진단에 따른 경영위기대학과 (전문)대학교육협의회의 미인증 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일반 재정 지원을 하도록 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분배하는 모양새가 되어 이 또한 대학의 수명 연장 방책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대학을 지나치게 규제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교육부가 대학의 규제를 완화한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개정안이 오히려 대학의 설립자나 경영자의 편에 유리하도록 함으로써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는 물론, 대학의 상업화가 우려된다. 규제를 완화한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육 수요자의 입장에서 대학의 수적 감소와 교육의 질적 관리를 확보하는 방향에서 대학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본다.

교육 당국은 대학의 수명 연장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필요시 대학을 정리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생리상 방치에 가까운 규제 완화는 악용의 여지가 많다.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에까지 규제 완화가 적용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자율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대학에 주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