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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숙
수필가, 前 파주 법원초등학교 교장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가 전체 분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근·현대사 비중은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불과 10%에 불과했다.

불과 20년 만에 근·현대사의 비중이 이렇게 많아지게 된 이유는 ‘교과서 개정과정에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의심한다.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양쪽 모두 근현대사에서 자신들이 강조하는 부분이 교과서에 많이 실리기를 원하고, 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있다.

근·현대사를 배우는 게 잘못일 리는 없다. 당연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또한 당연하게도 상고시대부터 고조선, 삼국, 남북국(발해·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역사도 배워야 한다.

교육과정 개정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현대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보 진영은 일제의 만행과 독립운동, 광복 이후의 민주화 과정을, 보수 진영은 한국전쟁과 반공, 경제성장 등을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들의 주장은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기형적으로 현대사 부분이 많아지게 한 원인이 되었다.

교육과정 개정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시민여론을 조사하겠다고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는 특정 정치집단의 글로 도배가 되고, 수차례에 걸쳐 열린 교육과정 공청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우겠다고 야심 차게 출발한 국가교육위원회도 위원선출 문제에서부터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일, ‘교육의 정치적 도구화’가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6·25에서 ‘남침’을 명확히 기재하고, 그래, 다 좋다.

민주주의건 자유민주주의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고, 6·25가 남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오늘날은 없을 것이다. 1980년대, 남침유도설을 주장하면서 당시 운동권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2000년대 이후로는 북한의 남침을 온전하게 인정하고 있다.

다만, 한국사 교과서에 나타나고 있는 근대사 비중의 지나친 확대는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흥선대원군 집권 이후 정도를 ‘근대화’의 기준으로 볼 때 현재 중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근대화 이전이 80%, 이후가 20% 정도이다. 반면,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근대화 이전이 25%, 근대화 이후가 75%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 비율은 수능시험의 문제출제비율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흔히 우리 역사를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반만년 역사에서 최근 150년이 교과서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를 따지면서 싸우는 사람들은 많지만, 전근대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을 되짚어본다면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반쪽짜리 거울인 셈이다. 근·현대사도 중요하고, 전근대사도 중요하다. 반만년 역사에서 어찌 보면 가장 끄트머리라고 할 수 있는 근·현대사가 교과서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고쳐져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주변국들로부터 끝없이 ‘왜곡’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공식적으로는 2007년에 끝났지만 사실상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싸워야 한다. 2010년 한일역사공동위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기된 ‘임나일본부설’ 또한 일본의 우경화와 맞물려 조금씩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역사를 소홀히 할 때, 우리는 또다시 민족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구태여 꺼내지 않더라도, 국가의 미래가 역사의 토대 위에서 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