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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그간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던 말이 요즘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역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중천금(重千金)’임을 실감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란 말을 사용했다. 다양한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가 민주주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민주주의 위기의 제1차적인 원인을 반지성주의에서 찾았다.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지 않고 다수결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권의 비합리적인 행위를 반지성주의란 말을 사용하여 비판한 것이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했다. 반지성주의는 과학이나 합리적 사유 또는 비판적 사유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지성주의란 말은 미국의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 1916-1970)가 1963년에 펴낸 『미국 생활에서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책은 1964년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정신적 삶(life of mind)과 그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분노이자, 정신적 삶의 가치를 끊임없이 최소화하려는 기질”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적 삶이란 인간이 지닌 이성(理性)과 합리성에 기반하여 성찰하고 추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반지성주의는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의 자유와 이견 표출을 억압한다. 파시즘은 전체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성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독재자는 이성, 지적 성실성, 합리적 사고, 사고의 자유를 내세우는 지식인 계층을 혐오하고, 감성적 선동에 의한 수적 우세를 선호한다. 이를 위해 언론 등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

고교 유형의 단순화 정책은 반지성주의의 발현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 국가가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교육정책이다. 전 정권은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국가를 운영했다. 자유민주국가가 지향하는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는 대신 평등교육에 집착했다. 평등교육은 하향 평등화로 교육의 질을 하락시킨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는 2018년 고교학점제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내세웠다. 2019년 11월에 교육부는 대입에서 고교 유형 간 서열화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서열화 해소를 위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2020년 2월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의 법적 근거를 2025년 3월 1일 자로 삭제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대해 관련 학교와 교육단체에서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민족사관학교 측은 건학이념과 맞지 않는다며 일반고로 전환되면 폐교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자사고 측에도 폐지의 부당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바 있고, 교육 관련 단체들은 자사고 폐지 정책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이것은 관련 교육기관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교육계의 반발이다.

「대한민국헌법」 제3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고, 「교육기본법」 제3조에도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헌법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관련 법에는 학생의 능력과 특성에 따른 다양한 교육이 합리적이라는 지성주의 시각이 함의되어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유형을 일반고로 획일화하고자 하는 것은 능력과 특성에 따른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획일적 평등교육을 지향하고자 하는 반지성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 평등교육은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반지성주의를 외친 윤석열 정부는 사회 각 분야에서 반지성적 요소를 제거하여 지성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트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