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교육학박사, 시인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조사를 마친 뒤 학생들은 그 청소년들 각자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썼는데, 평가서의 내용은 모두 동일했다.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아이에겐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조사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 200명의 청소년이 25년이 지난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었다. 사망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80명에 대한 추적 조사 결과, 176명이 매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직업도 변호사․의사․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다.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학창 시절의 여선생님 덕분이라고 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이끌었는지를 물어보았다. 여교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난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였다. 그렇다. 교육자의 사랑은 학생들이 미래에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마력 같은 힘이 있다.
루마니아의 고아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교육에 있어서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말해준다. 1989년 루마니아가 20년간 독재정치를 하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가 혁명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는 수천 명의 갓난아이를 키우는 강제수용소와 같은 기관을 만들었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루마니아가 드디어 서방 세계에 드러나면서 루마니아 고아원의 비참한 생활도 공개됐다. 당시 루마니아는 고아가 많았으나, 그들을 돌보는 보모는 적었다. 생후 1년 미만의 아이들이 기둥에 매단 우유병으로 우유를 먹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고아원의 3세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말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발달이 정상으로 양육된 아이들의 3~10% 수준으로 운동 및 정신 기능이 지체되어 있었다. 루마니아의 고아들은 무관심 속에서 양육되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루마니아의 고아원 이야기는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말해준다. 사랑 없이 양육된 아이들은 발달의 지체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른다. 교육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 중 상당 부분은 교육자의 사랑 결핍에서 온다. 사랑은 곧 관심이다.
재직 시절 필자는 학생들에게 사랑으로 가르쳤다. 종강하는 날에는 학생들 각자에게 손편지를 써 줬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각자 다른 내용의 손편지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붓으로 글을 써서 학생들 각자의 이름을 넣고 낙관(落款)을 찍어 주기도 했다. 200여 개의 낙관을 찍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은 필자가 정년퇴직하는 학기까지 계속되었다. 가을 축젯날 응원제에서 ‘유토피아’라는 학과 응원단이 입상하면 축시를 써서 다음날 필자의 연구실 밖 벽에 붙여 놓아 학생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시험이 끝나면 즉시 채점을 하여 중․고등학교에서 나눠주는 것과 같은 ‘꼬리표’를 만들어 성적을 공개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필자의 이러한 노력은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하는 데 기여했다.
학생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힘으로써 교수에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편견의 장벽을 허물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육은 사랑이고, 사랑은 관심이다. 교육자가 학생에게 무관심하면 학생 역시 교육자에게 무관심하게 된다. 사랑을 빼고 지식만을 주입하는 교육은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지식만을 주입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교육자 없이도 가능하다. 교육에도 교환이론이 적용된다. 교육자가 사랑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은 열성으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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