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원
인천인성여자고등학교 교사
등교와 원격을 오가며 아이들과 함께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생활에서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자연스레 듣게 되는 핫이슈 중의 하나가 고교학점제와 맞물린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이다.
앞으로 계획되어 예고된 고등학교에서 큰 변화는 현재의 단위가 학점으로 용어와 개념이 바뀌고 180단위 이상의 교과시간이 174학점으로 축소되면서 앞으로 교과 시수가 점차 줄어든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매번 개정되는 교육과정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총론을 떠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각 교과별 단위수(학점) 배분을 어떻게 할까?”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 대하게 된다.
다른 교과 이야기는 차치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한국사가 6단위(학점)에서 5단위(학점)로 줄어들게 되어 현재도 수박 겉핥기식 한국사 교육이 더욱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이 불편한 이야기를 넘어설 수 있는 “무엇을 가르칠까?” 하는 점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세계사가 필수이고 일본사는 선택이다. 또한 일본사는 전근대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근현대사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다. 중국은 세계사와 중국사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며 세계사에서는 일본사 비중이 그리고 중국사에서는 현대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각자에게 맡기고 지금 한국의 현실을 말해보자 7차 교육과정에서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가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한국사로 통폐합되어 근현대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한국사가 수능 필수로 지정되었으나 평가가 절대 등급으로 문제 수준은 역사에 관심이 있어 책을 많이 읽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1~2등급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되어 실제로 교실에서의 심도 있는 한국사 수업은 언감생심이다.
미래학자 다니엘 벨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이 끝날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이 말이 더 이데올로기적이지 않는가?
이렇게 역사는 현재의 해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그것을 가르치는 역사 교사의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개인적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서 이것을 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만을 이야기한다면 “가르쳐야 할 내용”에 대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역사교육에서는 전근대사나 근대사가 아닌 좀 더 가까운 현대사 중심의 가치 판단을 기반으로 하는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실 현장의 아이들은 사실 1~5공화국 이야기도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한다. 즉 자신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만든 뼈아픈 현실이고 패러다임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뿐이다. “얼마나 가르칠까?”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칠까?”가 보다 중요하고 이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선명하고 지속적으로 “그렇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말도 옛이야기고 전세계적 팬데믹을 예상했던 천하의 빌 게이츠도 ‘10년 앞은 어렵고 5년 앞은 예측하여 준비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런 빌 게이츠도 요즘은 1년 단위의 예상으로 예측 가능한 시간이 더 줄은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AI와 로봇이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대신해 가는 시대, 생산성 향상으로 벌써 주4일제가 논의되기 시작하는 시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덕인 소비를 지탱하기 위한 기본소득 도입이 쟁점화되는 시대, 이렇게 호모사피엔스가 호모데우스(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가 되고자 하는 시대를 보면서 어릴 때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와 엄마가 영생하는 기계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장면을 보고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생전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이 실존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녹여서 가르쳐야 할까?
이제는 이세돌이 이길 수 없는 바둑을 달성한 AI가 아직은 학습을 통해 렘브란트의 그림만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피카소의 그림은 제대로 구현할 없는 “인간력”이 조금은 남아 있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영생하는 기계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철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커 갈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성심껏 최선을 다해 살아있는 역사를 가르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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