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 (전)서울역촌초등학교 교장
동화작가
“에휴, 왜 저게 안 보이지? 내가 읽어 줄까?”
산책로 비탈길마다 어김없이 걸려 있는 현수막. ‘자전거에서 내려서 걸어갑니다.’를 못 본 척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비켜서며 투덜투덜. 오늘도 불평을 쏟아낸다.
“그런 말 자꾸 하면 꼰대 되는 거야. 당장 내려서 끌고 가라고 가로 막지도 못할 거면서.”
옆에서 걷던 남편이 못마땅하다는 듯 핀잔을 준다.
“하긴 쟤네들 나이는 다 내가 가르쳤어. 잘못 가르친 거지 뭐. 공부만 제일로 쳤으니까.”
“그게 어디 혼자만의 잘못인가. 시민 정신을 지식으로만 아는 사회 전체의 문제지.”
그렇다. 만일 바른생활 시험에 ◯, ⨉문제가 나왔다면 어땠을까? 누구나 비탈길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는 (◯)이라고 답할 거다. 이렇게 잘 알면서 안 지켜지는 일이 어디 이 일 뿐일까? 곳곳에서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이 따로따로인데도 여전히 우리는 성적만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못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의 걱정도 늘어난다. 그중 첫째 걱정거리는 바로 아이들의 학력 격차와 학습 결손이 커지는 것이다. 물론 가정에서의 원격학습은 빈 집에 홀로 남은 아이가 스스로 따라 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보호자가 집에서 학습을 보살펴준대도 대면학습만한 학업성취 효과는 얻기 힘들고.
교실에선 책상 위에 교과서를 펼쳐 놓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그 날 학습목표 절반은 이룬 셈이다. 교사들은 아이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안다! 이 아이가 딴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방금 설명한 걸 잘 이해했는지를. 그리고 둘러본다. 어리둥절한 눈동자가 여럿이면 힘들어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여 설명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교사와 눈이 맞아야 공부를 잘 하는데 원격교육은 그게 안 된다. 학급 전체가 한 눈에 안 들어오니까.
교사 눈을 피해 틈틈이 짝을 비롯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통의 길을 여는 것은 교실에서 얻는 최고의 덤! 학교가 사람을 만드는 건 소통이라는 덤 때문인데 얼굴도 잘 모르는 담임, 친구들과 얼마나 통할지!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아이들끼리 다툼이 잦은 건 당연한 일이다. 얼굴을 알아야 이해하고 친해지는데 그 길이 막혔으니 답답하다.
이런 때 가장 걱정해야 할 게 정말 성적일까? 결코 아니다. 막히고 닫힌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어주는 게 먼저다. 친구 관계의 부재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너 명씩이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보자. 우선 같은 학원을 다니거나 취미가 비슷한 아이들부터. 아이들은 사실 어른들보다 또래끼리 어울려 배우는 게 많다. 이 때 주의할 일은 아이들의 움직임을 교사와 부모가 꼭 파악해야 한다는 것! 아이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교사와 부모가 제일 먼저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아이들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죄책감 등에 이끌려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안 되니까.
흔히들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담임을 맡으면 욕심이 많은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이걸 왜 모르지? 애만 태웠을 뿐, 나보다 몇 배 다치고 아팠을 아이의 속마음은 몰랐다. 난 천재는 아니어도 늘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기에 야단맞은 적이 별로 없으니까. 당해보지 않았다고 이해를 못하다니 난 그만큼 부족했던 거다.
손자가 공부에 꾀를 부린다고 하소연하는 딸의 전화를 받고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 크면서 점점 잘 할 거야. 믿고 기다려 봐.’ 맞다! 이게 정답인데. 내가 교사이고 엄마였을 땐 이걸 몰랐다. 당장 눈에 보이는 발전이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다그치기만 했다. 이따금 등 두드려주며 기다리면 알아서 하게 되었을 텐데. 공부도 규칙도 제 속에서 우러나와야 제대로 실천하는 건데. 그때 그 시절 어린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내가 너무 꽉 막힌 모범생이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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