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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교육학박사·시인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카트만두 왕국에는 할단새가 있다고 한다. 일명 야명조(夜鳴鳥)라는 이 새는 둥지 없이 산다. 밤이 되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싸우며, “내일은 꼭 집을 짓겠다.”라고 결심한다. 하지만 고통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자 간밤에 했던 결심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은빛 세계를 활강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밤이 되면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같은 다짐을 한다. “내일이면 집을 지으리라.” 그렇게 후회와 다짐을 수없이 되풀이하다가 결국에는 둥지를 짓지 못하고 멸종되었다는 전설의 새다.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번 시험은 잘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결심은 언제 했느냐는 식으로 잊어버린다. 새해가 되면 금연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이 역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주식에 손을 대서 돈을 다 날리고, “다시 주식에 손을 대면 성(姓)을 간다.”라고 다짐하지만, 시장이 달아오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주식투자에 나선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시작을 잘하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일을 끝마치기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결심이 서면 망설이지 말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리하여 ‘결심중독’이란 말이 나왔다. 사회심리학자인 최창호 박사는 2016년에 『결심중독』이란 책을 냈다. 그는 심리중독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결심중독이고,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심중독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결심하지만 차일피일하면서 그 결심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 박사는 결심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계획을 세운 후 작은 일부터 행동에 옮길 것을 제안한다.

공자는 말보다 실천하는 제자를 좋아했다. “내가 안회(顔回)와 함께 온종일 이야기했는데, 내 말에 대해 아무런 이견(異見)이 없어 어리석은 줄 알았으나, 나한테서 물러간 후에 개인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살펴보니 안회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공자의 말을 들을 때 안회는 질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하므로 어리석은 사람일 줄 알았으나, 그가 스승에게서 물러나 사생활을 살펴보니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배운 바를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실천가였다. 그리하여 공자는 수많은 제자 가운데 안회를 특별히 좋아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소싯적 새해를 맞을 때마다 1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하였다.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였다. 유배 시절에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부지런할 것(勤)을 주문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유배로 인해 폐족(廢族)이 된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는 점을 편지로 누누이 강조했다. 강진 귀양 시절 자신도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독서와 글쓰기를 실천했다. 다산은 ‘과골삼천(踝骨三穿)’, 즉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유배의 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적당히 시간 만 보냈다면 500권 이상의 명저를 남길 수 있었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노래했듯이,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 그리하여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결심한 바를 미루지 않고 즉시 행동에 옮기는 습관을 기르는 것,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교육은 없을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