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교육학박사·시인
여름이 되면 제철을 만난 매미가 경적을 울리듯 요란하게 울어댄다. 특히 도시 매미는 차량 소리와 경쟁이라도 하듯 악을 쓰고 울어대니 고막이 터질 지경이다. 밤에도 매미는 수면을 방해한다. 가을이 되니 매미 소리가 사라졌다. 매미의 퇴장과 함께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갔다. 매미는 고추잠자리에게 배턴을 넘겼다. 모든 것이 다 때가 되면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장 앙리 파브르(Jean-Henri Fabre)의 『곤충기』에는 매미에 관한 자세한 관찰 결과가 들어 있다. 매미의 특징은 단연 시끄러운 울음소리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에게 매미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파브르는 매미 우는 소리가 마른 호두 알을 한 자루에 넣고 껍데기가 깨질 정도로 흔들어댈 때 나는 소리와 같이 매우 시끄럽다고 했다. 매미 한 마리가 내는 소리는 믹서기 소음과 맞먹는 70~90db이라고 하니 수십 마리가 동시에 울어대는 소리는 가히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한다. 매미는 시각(視覺)이 발달하여 커다란 겹눈으로 사물을 매우 잘 볼 수 있다.
매미의 미학은 ‘기다림’이다. 매미가 성충(成蟲)으로 살아있는 기간이 1주일 남짓 한데, 그 시간을 위해서 적게는 7년, 많게는 17년이라는 기간을 유충(幼蟲)으로 지낸다고 한다. 17년간 땅속에 있던 매미 떼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해인 올해 미국 동부 지역은 곳곳에서 출몰하는 매미 떼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브루드 텐(Blood X)’이라고 하는 이 매미는 일반 매미와는 달리 검은 몸에 붉은 눈, 주황색 날개를 가졌다.
매미는 예로부터 고귀한 곤충으로 여겼다. 중국 진나라 때의 시인 육운(陸雲)은 늦가을 매미를 주제로 지은 한시 <한선부(寒蟬賦)>의 서문에서 매미를 ‘지극한 덕을 갖춘 벌레’이고, 군자(君子)가 지녀야 할 5덕(五德)을 지닌 곤충이라고 했다. 고려말과 조선, 명나라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들에게 익선관(翼善冠)을 쓰도록 했다. 조정의 신하들뿐만 아니라 임금도 곤룡포로 정장할 때 익선관을 썼다. 익선관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뿔이 붙어있다. 이는 매미의 5덕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신하의 관모에도 5덕을 기리어 매미 날개를 붙여 사용하였다. 5덕이란 문(文)·청(淸)·염(廉)·검(儉)·신(信)을 말한다. 매미는 머리에 관대의 끈이 늘어진 모습과 흡사하여 문인의 기상을 갖췄고(文), 오로지 수액과 이슬만 먹고 살아서 깨끗함이 있으며(淸), 사람이 가꿔놓은 곡식을 먹지 않아서 인간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니 염치가 있는(廉) 곤충이다. 아울러 매미는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 살므로 검소함이 있고(儉), 철에 맞추어 어김없이 찾아오는 믿음(信)의 곤충이다.
나는 여기에 ‘탈(脫)’이라는 덕목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탈’은 ‘새로움’을 뜻한다. 『근사록(近思錄)』에 “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하루를 새롭게 한다(君子之學必日新). 하루를 새롭게 함은 날마다 진보하는 것이다(日新者日新也).”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의 배움은 나날이 새롭게 진보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대학(大學)』에 나오는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과 통한다. 이 모두가 변화를 강조하는 말이다. 매미는 오랜 기간 유충으로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 금선탈각(金蟬脫殼), 즉 ‘금빛 날개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데서 과거를 잊고 새 출발 한다는 교훈을 준다. 금선탈각은 매미의 삶에서 대변화를 거치는 단계이다. 원래 금선탈각은 중국의 병법서인 『삼십육계(三十六計)』에 나오는 말로,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감쪽같이 몸을 빼 도망가는 것을 뜻하는 위장 전술의 하나다. 매미에게는 완성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진화하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여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에 주저했다면 매미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멸종되었을 것이다. 사람도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나 ‘탈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매미의 6덕, 즉 문(文)·청(淸)·염(廉)·검(儉)·신(信)·탈(脫)의 의미를 성찰하면 지난여름 귀가 따갑도록 울어 대서 귀찮게 여겼던 매미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댄다고 나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매미는 인간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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