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교 교감
20세기 국내 최고의 석학 중의 한 사람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8월 27일 서울대학교의 75회 후기 학위 수여식에서 미리 제작한 영상으로 온라인에서 전한 메시지가 우리 교육에 진한 울림을 주고 있다. 이날 그는 “마스크 한 장이 남과 나, 공과 사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공생의 가치를 보여줬다”고 힘차게 축사를 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속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을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또한 “비대면으로 수업한 졸업생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디지로그(digilog)의 개념을 체득했다. 젊은 여러분은 생명 자본의 중요성을 생생히 경험한 세대다.”라고 역설했다.
그의 졸업 축사를 잠시 살펴보자. “(…) 여러분들은 디지털 공간의 ‘접속’과 아날로그 현실의 ‘접촉’이 상반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로 ‘융합’한 디지로그 (digilog=digital x analog) 시대를 살아갈 주역이 된 것입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기침 하나가 내 일상의 생활을 뒤집어 놓은 상황도 겪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도 생명의 내재적 가치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순간 물질 자본이 생명 자본으로 전환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나와 남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간단한 대답 같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쓴다”라는 사적/이기적 답변이거나 아니면 “남들을 위해서 쓴다”의 공적/이타적 답변밖에는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나(自)에게 득이 되는 것은 남(他)에게는 실(失)이 되고 남에게 득이 되는 것은 나에게는 해가 되는 대립 관계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배제의 논리가 지배해 왔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마스크의 본질과 그 기능이 그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면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해서 쓰는 마스크”라는 공생관계는 지금까지 생명의 진화를 먹고 먹히는 포식 관계에서 남을 착취하는 기생 관계로 해석해 왔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
구구절절이 공감하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배출한 인간상은 “나와 남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경쟁에 승리한 자만이 독식하는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자신의 출세를 통해 타인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남을 지배하려는 것에 집중되었다. 또한 마스크를 쓰는 이유에 대해 “정부에서 쓰라고 하니까 쓴다”고 대답하는 획일주의, 전체주의적 사고관에 몰두해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교육하여 길들인 교육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란 인사들의 행태를 보라. 사법농단과 같이 오직 자신의 이익과 소속 집단의 기득권을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약자 위에 군림하고 무시하고 철저히 배제하는 극단적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우리의 청년들은 자타(自他)와 공사(公私)의 담을 넘어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역들이다. 그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이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촌이 요구하는 미래의 인재로서 맘껏 창의적 역량을 발휘하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절망의 수렁에서 ‘N포 세대’, ‘88만원 세대’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박탈한 고용절벽을 한시라도 빨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온 국민이 나서 극복하는 길만이 우리 대한민국이 살 길이며, 우리 교육은 이런 난제 해결의 중추적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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