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말씀과 행하는 일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을 것 같으면 모름지기 조용히 조리 있게 여쭤 그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데, 곧바로 자기의 의견으로 문득 스승이 잘못이라고 논란해서는 아니 되며, 또한 의(義), 리(理)를 생각하지 않고 스승의 말만 맹신해서는 아니 된다.”
이 말은 율곡 이이가 왕명을 받아 성균관의 규칙인 학령(學令)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한 학교모범(學校模範)의 한 구절이다. 이 문건은 조선중기 당시의 바람직한 교육에 대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며, 어떤 향교에서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학교모범을 먼저 한 번 읽은 후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것을 규정했을 정도로 조선시대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위의 문장에서 스승은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표현돼 있지 않다. 스승의 말에 의심이 나는 것이 있으면 예의를 갖춰서 질문하되, 스승에 대한 성급한 비난이나 맹신은 경계하고 있다. 스승에게 질문하는 것은 학생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질문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이치에 맞는지 따져볼 것을 강조한다.
학교모범에는 '가르침은 스승에게서 받지만,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 도와가면서 하는 일'이라든가 '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기거할 때 토론을 통해서 서로의 식견을 늘릴 수 있으므로 진지하게 임하라'는 취지의 구절도 있다. 또한 책을 읽을 때 '억지로 기억하는 것을 일삼지 마라'는 구절도 있다. 학교모범의 내용을 정리하면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에서의 공부는 암기를 기본으로 하되, 선생님께 질문하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필자가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받아보거나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우리의 전통교육은 암기 위주며, 질문과 토론을 억제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우리의 교육전통과 관련된 자료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내린 결론이 아니라 기존의 선입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 전통이 있음에도 질문과 토론을 강조하는 것이 마치 서양식 교육의 산물이라고만 오해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신하들이 임금과 치열하게 질문하고 토론했던 기록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질문하고 토론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이나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질문 없냐고 물어봤을 때 아무 질문도 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누구 앞에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토론하는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 대화와 토론을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다만 누군가가 "서양의 어떤 나라의 방식에 따라 우리도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을 하자"고 제안한다면, 필자는 "우리의 교육전통을 되살려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을 하자"고 제안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잊힌 선조들의 교육 전통을 하나씩 되살릴 수 있도록 작게나마 뭔가는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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