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부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시인·교육학박사
“깐깐하기 그지없는 교수의 3시간 연강(連講)이 끝났다. 3시간 중에 딱 5분, 화장실 가는 시간만 허락하기로 유명한 교수가 강의실을 나가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났다. …… 음의 고저가 없는 교수의 수면제 같은 목소리를 3시간 동안 꼿꼿하게 앉아서 듣는 것은 마치 듣는 사람의 정신력이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이래경의 로맨스 소설 『계약동거』에 나오는 글이다. 수면제 같은 목소리로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 연속 강의하는 교수의 이야기다. 이것이 실제라면 수업시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교수는 1분 1초도 허비하지 않고 가르칠 내용을 충실하게 강의하는 성실한 교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교수방법론적 측면에서 보면 결코 성공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라고 보기 어렵다.
휴식시간 없이 3시간 연속으로 강의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인간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어서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강의를 장시간 듣는다는 것은 강의실을 수면실로 만들 뿐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육군이 반복적으로 테스트한 결과, 단련된 병사들조차 1시간의 훈련에 10분의 휴식을 취하도록 함으로써 행군도 순조롭게 하고 정신력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군대에서는 1시간 훈련에 반드시 10분간 휴식시간을 준다. 군대 시절, 1시간의 고된 훈련 후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얼마나 달콤했는지를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안다. 10분간의 휴식시간에 피는 담배 한 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았다. 대학의 1시간 수업이 50분간이고 휴식시간이 10분인 것은 미국 육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와 일치한다.
대학에서는 주당 3시간의 수업을 연속으로 진행하는 것을 금한다. 2+1, 1+1+1시간으로 편성하거나 75분+75분으로 나누어 수업하도록 한다. 토니 부잔(Tony Buzan)은 『양 뇌를 사용하라(Use of Your Brain)』라는 저서를 통해 성인은 90분 동안은 이해하면서 들을 수 있지만 기억하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0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토니 부잔의 이론을 바탕으로 밥 파이크(Bob Pike)는 ‘90/20/8’의 법칙을 제안한다. 어떤 수업도 90분을 넘지 말아야 하고, 20분마다 변화를 주며, 8분마다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장시간 대화를 독점한다면 상대가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불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ck)은 베를린대학교에서 학생 164명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간단한 문제를 풀도록 했다. A그룹은 문제를 다 풀 때까지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고, B그룹은 문제를 푸는 도중 중단시키고 다음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를 모두 푼 참가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기억에 남는지를 질문했다. 그 결과 B그룹의 참가자들이 A그룹의 참가자들에 비해 무려 두 배나 더 많은 문제를 기억해 냈다. 자이가르닉은 하던 일을 완성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긴장이 풀려서 잘 잊히지만, 끝까지 처리하지 못한 일은 우리 내면에 긴장감을 일으켜 미련을 남기고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ck effect)’라고 명명했다.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은 매회가 끝날 때 클라이맥스를 거쳐 새로운 복선을 깔고 나서 ‘다음 호에 계속’이란 글로 마무리한다. 이것 역시 자르가르닉 효과다.
수업에서도 주구장창 장시간 강의를 하는 대신 휴식시간을 주어 다음 시간을 기대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면 다음 시간이 시작될 때는 집중력이 높아지게 되어 수업효과가 높아진다. 수업이 시작될 시간에는 학생들의 주의집중력이 최고점(제1황금시간)에 이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하락하다가(침체시간)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집중력이 다시 높아지는(제2황금시간) 패턴을 나타낸다. 수업시간이 길수록 침체시간이 길어지는데, 이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속 강의 대신 적절한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다시 학생들의 주의집중력이 높아지게 되어(제1황금시간) 수업효과도 높아진다. 수업은 가르칠 내용만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칠 내용을 적절한 방법으로 학생과 공유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 요구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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