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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교육학박사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공자는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병력(兵力)을 넉넉히 하며, 백성들이 신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이 세 가지 중에서 부득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지를 다시 물었다. 공자는 병력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공이 부득이한 경우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먹을 것’과 ‘신뢰’ 중에서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는지를 재차 물었다. 공자는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까지 남은 것은 ‘신뢰’였다. 공자는 정치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국민이 정치인들을 불신하는 상황에서 위정자들이 되새겨 볼 이야기다.

퍼트남(Putnam)에 의하면, 신뢰는 규범이나 네트워크와 함께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사회에 존재하는 상호간의 신뢰, 공동의 비전과 시스템에 관한 믿음, 준법정신, 상호간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 등은 사회구성원간의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여주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신뢰가 깨지면 모든 것이 허사다. 신뢰는 인간관계의 근본이요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기둥이 부러지면 집은 폭삭 주저앉고 만다.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신뢰는 모래나 콘크리트와 같은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자칫하면 모래처럼 삽시간에 무너지기도 하고, 시멘트처럼 단단히 굳어지기도 한다. 신뢰는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이다. 신뢰는 준만큼 되돌아온다.

신뢰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일단 말을 내뱉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거나, 지키지 못한 것을 거짓으로 변명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양치기 소년’으로 간주하고 그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마음이 고착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신뢰를 쌓는 기초 작업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한 말이라면 첨부터 꺼내지 말아야 한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학생들과 한 약속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아이들도 부모나 교사·친구 등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한 약속 역시 지켜야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다가 끝내 불어난 물에 떠내려 가 목숨을 잃은 중국 노나라의 미생(尾生)이란 젊은이는 약속을 목숨과도 바꿀 만큼 중시했다. 특히 아이들과 한 약속은 우직하리만큼 지켜야 한다.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따라 가려고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며 보챘다. 시달리다 못한 중자의 아내가 아이를 달랬다. “얘야, 얼른 돌아가거라. 엄마가 돌아와서 돼지 잡아 줄게.” 이 말을 듣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돌아섰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가 돼지를 묶어 놓고 날이 선 칼을 들고 돼지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내는 놀라서 급히 뛰어가서 그의 팔을 잡으며 왜 돼지를 잡느냐고 묻자 증자가 말했다. “당신이 아이에게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 준다고 하지 않았소?” 아내는 아이를 떼어놓기 위해 속인 걸 정말로 알아들었느냐고 증자의 행동을 나무랐다. 그러자 증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어떻게 아이를 속일 수 있단 말이오. 아이들이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이오. 당신이 아이를 속인 것은 아이에게 남을 속이도록 가르치는 것이라오. 엄마가 아이를 속이면 아이는 엄마를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무슨 교육이 되겠소.” 말을 마친 증자는 돼지의 목을 베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돼지를 잡는다는 뜻의 살체교자(殺彘敎子)라는 말이 나왔다. ‘돼지 잡아 준다’고 학생들을 꼬셔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교사가 있다면 학생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육은 허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