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대학입시에 의무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일부 대학은 2호 조치부터 서류 평가 총점을 0점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2028학년도부터는 모든 전형에서 학폭 이력이 반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피해학생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부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가해학생 조치가 대입에서 결격 사유로 반영되면 심의위원들이 피해학생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주저하게 될 수 있다고 느낀다. 예컨대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해 가해학생의 학급 교체나 전학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위원들은 ‘이 결정이 가해학생의 앞길을 완전히 막는 것은 아닐까’하는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다. 가해학생의 미래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조치를 내리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행법은 심의위원 3분의 1 이상을 해당 지역 학부모를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지역 학부모 입장에서 다른 학부모의 자녀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주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교육지원청 역시 적극적인 처분을 꺼릴 수밖에 없다. 가해학생 측이 불복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하면 교육지원청은 소송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패소할 경우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 회피 구조’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육지원청은 심의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조치 결정 통보서도 교육장 명의로 작성되며, 통보서에는 어떤 심의위원이 어떤 근거로 찬성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학폭위 회의록 또한 간사가 사후적으로 정리하는 수준에 그쳐 실제 논의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지 않다. 심의 과정에서 “조치가 너무 강한 것 같은데 점수를 1점씩만 낮추자”는 식의 비합리적 의견이 나오더라도, 위원별 발언 내용은 법상 ‘비밀’로 취급해 공개하지 않고 회의록에도 기재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피해학생 보호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근본적으로 가해학생 조치와 대입을 연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미 제도적 방향이 정해진 것이라면, 그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소한 책임 구조는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심의위원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위원 개개인이 내린 결정과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도록 해야 한다. 현행법상 학폭위는 교육장에게 조치를 ‘요청’하는 구조이므로, 사실관계 인정, 학폭 해당 여부, 판정 점수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위원 스스로가 직접 ‘조치 결정 요청서’에 기재하고 서명·날인하는 절차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피해학생 측이 엄벌을 요구하는데도 화해 정도를 ‘높음’(1점)으로 평가한 위원이 있다면, 회의록을 작성하는 간사가 아니라 그 위원이 왜 그러한 판단을 했는지 직접 설명하고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개별 위원들이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논증이 어려운 비합리적 의견은 자연스럽게 배척될 수 있을 것이다.

학폭 문제 해결의 핵심은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선도라는 교육적 목적에 있다. 대입 연계라는 강력한 제도를 도입한 이상, 그 무게만큼 심의 과정의 공정성과 책임성도 강화해야 한다. 피해자를 지키는 힘은 제도의 엄격함이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