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서(신한대학교 보건대학 치기공학과 4학년)
우리는 종종 예기치 않은 멈춤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분명히 잘 달려왔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 문득 길이 끊어진 듯 발걸음을 멈추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실패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자신이 틀린 방향으로 걸어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멈춤은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잠깐의 정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전공하며 예술의 세계 속에서 제 가능성을 찾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오랫동안 바라본 목표가 무너지는 듯한 공허함 속에서 한동안 방향을 잃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은 답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손끝으로 세밀함을 다루는 감각,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며 형태를 읽는 눈 — 미술이 길러준 감각들이 치과기공이라는 새로운 길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치기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는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기술적인 영역이라는 인식 탓에 예술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세계가 얼마나 깊게 이어져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밀함과 섬세함, 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는 일. 그것은 예술과 닮은 치유의 기술이었습니다. 실습을 거듭하며 저는 점점 이 세계의 깊이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무렵, 해외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치과대학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며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기술자가 아닌 ‘탐구자’로서의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이 일을 연구로 확장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배우기 위해 신한대학교 4학년 과정에 편입했습니다.
편입 후 신종우 지도교수님을 만나며 저는 이 분야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층 깊어졌습니다. 수업과 실습을 통해 치과기공이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와 창의적 설계가 함께 작동하는 영역임을 체감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는 교수님의 태도와 연구에 대한 열정은 제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정확한 복제’보다 ‘새로운 가치를 설계하는 일’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향한 도전은 언제나 불안과 설렘이 공존합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어렵고, 작은 성취에도 자신을 의심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배움의 의미가 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탐구하느냐였습니다. 결국 그 시간들이 쌓여 제 안의 방향성을 단단히 세워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치과기공의 미래를 단순한 제작 기술이 아닌,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융합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연구로 구체화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학문을 통해 인간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신소재와 인공지능, 디지털 설계가 결합된 새로운 치과기공 시스템을 탐구하며, 환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연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기술을 넘어 사람에게 닿는 과학, 그것이 제가 꿈꾸는 연구의 방향입니다.
어쩌면 도전이란, 대단한 용기보다는 조용한 끈기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배움을 이어가는 과정, 그 반복 속에서 도전의 본질은 서서히 피어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일이 결국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 믿음을 ‘작은 불씨’라 부릅니다. 누군가에게는 희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불씨가 모이면 새로운 길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각자가 지나온 멈춤의 시간은 결코 헛된 순간이 아니라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배우고, 그것이 결국 인생의 나침반이 됩니다. 멈춤의 순간은 끝이 아니라,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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