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을이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다. 가을은 흔히 ‘수확의 계절’이라 불린다. 실제로 논밭에서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과수원마다 탐스러운 열매가 가지마다 매달려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풍경 속에서 문득 ‘학교의 가을’을 떠올리게 된다. 봄에 씨앗을 뿌리듯 3월에 학생들과 함께 시작한 교육의 여정이 이제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가 ‘가을 우체국’이라면 어떨까? 교사와 학생이 한 해 동안 함께 쌓은 배움의 결과물을 정성껏 포장하여, 세상 곳곳으로 ‘교육의 택배’를 보내는 곳 말이다. 지식과 성취만이 아니라 마음의 성장, 협력의 경험, 그리고 따뜻한 관계의 기록까지 담은 택배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곳, 바로 그런 학교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가을 ‘감사 우체국’이라는 행사를 연다. 학생들은 1년 동안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선생님, 친구, 가족뿐 아니라 교문 앞을 지키는 학교 지킴이, 급식실 조리사에게도 손편지를 전한다. 편지는 ‘학교 우체국’이라 불리는 교무실에서 접수되어, ‘가을 택배’처럼 각자에게 전달된다. 편지 속에는 배운 수학 공식도, 과학 실험 결과도 없지만, ‘사람 사이의 배움’이라는 더 큰 성취가 담겨 있다. 한 교사는 “아이들의 글씨는 서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성장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또 다른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는 ‘가을 학습 박람회’를 연다. 학생들이 1년 동안 수행한 연구와 탐구의 결과물을 직접 전시하고 설명하는 자리다. 어느 팀은 지역 하천의 수질을 조사해 개선 방안을 제시했고, 또 다른 팀은 마을 어르신의 구술 기록을 디지털 스토리로 엮었다. 발표회가 끝난 뒤 학교는 그 결과물을 모두 ‘배움의 택배’로 포장해 지역 도서관과 복지관에 전달했다. 아이들의 배움이 교실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로 배달된 것이다.

이렇듯 학교는 지식만 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거대한 우체국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우체국의 집배원처럼 학생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해 세상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한 해 동안 교사는 아이들에게 삶의 좌표를 찾아주는 주소지 확인자이자, 때로는 ‘배달 지연’이 되지 않도록 격려와 기다림을 보내는 조정자이다.

한편 학생들은 자신만의 ‘교육 소포’를 포장하는 발신자다. 어떤 학생은 수학의 논리를, 어떤 학생은 친구와의 화해를,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이 쓴 시 한 편을 그 안에 넣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성장’이라는 따뜻한 손편지가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강조되는 ‘성장 중심 평가’, ‘과정 중심 평가’도 결국 이런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점수나 등수가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이 어떤 마음으로 배우고 변화했는지를 살피는 것,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해 포장하고, 다음 배움으로 연결하는 일, 그것이 바로 가을의 학교가 해야 할 택배 작업이라 할 것이다.

교사 역시 자신을 위한 ‘성찰 택배’를 준비할 때다. 1년을 돌아보며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보냈는가?”, “나의 수업은 누구에게 닿았는가?”를 묻는 일은 교사의 성장에 꼭 필요한 계절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에 도착한 교육의 편지가 있다면, 올해는 이미 풍성한 수확의 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기말시험과 겨울방학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가을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학교가 한 해의 결실을 정리하며 보낸 ‘가을 택배’는 학생들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따뜻한 온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내년 봄이 다시 오면, 그 온기에서 새로운 씨앗이 움틀 것이다.

우리의 학교들이 진정한 ‘가을 우체국’이 되어, 지식의 소포보다 마음의 편지를 더 많이 보내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학교라면, 우리 세상은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