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영어 교육 전문가 / 본지 편집위원)

결국, 초등학교 때 토플을 했던 아이나 겨우 읽을 수 있던 아이나 모두 교과서, 프린트, 부교재를 달달 외우고 수행평가를 부지런히 해가며 영어 점수를 받는다. 드디어 아이가 영어 성적을 잘 받는다. 이걸 유지해야 한다. 아이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교과서를 말로 외우고 손으로 쓰고 문제집을 풀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중학교 3년은 그렇게 교과서를 외우다가 가버리고 고등학교에 가자마자 배치 고사를 본다. 첫 시험부터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른 빼곡하고 난해한 지문들이 가득하다. 아이는 당황하고 부모는 또다시 불안해진다. 새로운 고차원의 리그가 열린 것이다. 중학교 때처럼 교과서를 달달 외우면 되지 않나? 내신에는 어느 정도 그런 성실도가 반영되지만, 요즘 고등영어는 서구의 학교처럼 강의종류가 분화되었고, 내신 시험과 입시 시험은 스타일이 또 다르다. 중학영어와 다르게 고등영어는 달달 외우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게다가 다른 공부의 양도 넘쳐나서, 이제 영어 공부는 시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결국, 유아 때부터 고달픈 영어 학원 인생을 살아온 아이들의 고등학교 영어반 평균은 50점대를 맴돈다. 이러니 영어의 길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줄곧 불안하고 버겁다.

한 리그에 열중하여 과하게 시간과 돈, 에너지를 쓰다 보니 다음 단계에서 도리어 헤매게 되고 결국은 영어를 못하는 아이가 된다면 그 과정은 검토가 필요하다. 유아영어-초등영어-중학영어-고등영어를 쭉 꿰뚫어 전 과정을 이어주고 무리 없이 업그레이드해 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각 코스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설계했겠지만, 그들 중 유아영어-초등영어-중등영어-고등영어에 걸친 모든 과정을 긴 세월 동안 실제로 모두 가르친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그들은 자신의 리그가 그 전과 그 뒤를 이어주는 실질적 역할이 되도록 진도 설계를 했어야 한다.

30년 전 알파벳과 파닉스를 처음 가르칠 때는 나는 유아영어나 어린이영어를 전문으로 하려 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성인이 되도록 10여 년 동안 떠나지를 않았고, 또 다양한 연령의 제자들이 오가다 보니, 많은 아이의 유아부터 대입까지의 영어 인생을 맡고 말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부모들의 갖가지 자녀 영어 고민을 상담해 주며 보낸 그 세월 동안 나름 깨달은 것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